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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Nov 20. 2023

보시

나는 살아오면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많이 만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고 나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고, 혼자 남아계신 엄마가 떠올랐다.


착한 공덕은 3대까지 내려간다는 옛말이 맞는 말인가 보다,라는 강력한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을 뒤흔들다 가신 분도 아니었고, TV나 신문에 한 번 나온 적도 없는 분이셨다. 그저 사 남매가 아직도 존경하고 있는 좋은 아버지셨고, 제자들이 아직도 잊지 못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오래전, 중학교 등록금이 있던 시절에 당신의 쥐꼬리만한 월급을 털어서 제자들의 앞길을 열어주셨고, 밥 대신 죽이 주식이던 제자에게 가끔이라도 일부러 밥을 먹이려고 애쓰시던 분이셨다. 시골의 가난한 교사의 아내였던 우리 엄마는 아버지의 제자를 당신 제자처럼 아끼셨고, 따끈한 밥을 먹는 제자 옆에서 제자의 구멍 난 양말을 꿰매주셨던 착한 사모님이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들이었지만, 늘 우리 집을 찾아오던 제자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사실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동네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제자들은 주말이면 우리 집으로 몰려와서 언니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많다.


결혼을 했다. 우리 엄마 표현대로 '부처님 반 토막'같은 착한 남자였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전혀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어머니에게나 시댁 식구들에게나, 친정 식구들에게 선물 하나를 하더라도 아까운 마음 없이 정성을 다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두 사람이 탄탄한 직장인이었으니, 우리는 나누면서 많이 행복해했다.


우리 모두가 잊을 수 없는 IMF! 친정 쪽의 먼 조카가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했다는 소문을 엄마께 들었다. 무스탕 사업이 너무나 잘 되다 보니 매장을 자꾸 늘리다가 그야말로 알거지가 된 것이다. 그 주변에 제법 잘 사는 친척들이 있었지만, 이미 돈을 빌려서 갚지 못한 상태라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고 했다. 아이들은 처가에 맡기고, 모시고 살던 어머니는 누이에게 맡기고, 부부 두 사람만이 허름한 여인숙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살고 있다는 말! 평소에 친하지도 않던 그 부부가 계속 눈에 밟혔다. 남편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 우리 부부는 자연스럽게 대출을 받아서 도와주자고 했고, 그 조카의 아내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다.


​"나 수원 이모야. 힘들지? 돈을 좀 구했어. 입금할게. 뭐라도 시작해."


질부는 너무나 놀라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이모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올 12월에 꼭 갚겠습니다,"


질부의 그 말에 나는 나중에 갚을 수 있을 때 갚으라고 했다. 그다음 주에 질부는 내게 전화를 걸어서 고춧가루 장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일이 지나고 바로 남편이 회사에서 보너스를 타왔다. 우리가 도와준 금액의 두 배보다 더 많은 금액이었다. 회사 이익금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인센티브가 잘 지켜지던 대기업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큰딸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안내장이 왔다.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아이의 집이 불에 타서 숟가락 하나를 건지지 못해서 돈과 생활용품을 걷는다는 글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한 후에 남편의 보너스 봉투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를 한 장 꺼내서 봉투에 넣어 다음날 학교에 가는 아이 가방에 넣으며 선생님께 잘 갖다 드리라고 말했다.


그 몇 달 후...


남편의 회사가 또 대박이 났다. 이번에는 지난번 보너스의 두 배의 금액을 받았다. 너무나 놀라웠다. 하늘이 마치 선물을 주시는 것 같았다.


뭔가를 바라고 나눔을 한 건 아닌데, A에게 주고 B에게 준 것이 C에서 돌아오고, D에서 돌아왔다. 그것도 몇 배로, 어떤 경우에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으로. 이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내 눈에 보이면 몸을 움직였을 뿐이었는데,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처럼, "당신이 할 일을 하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라는 말을 믿었을 뿐이었는데, 놀라운 기적을 너무나 자주 만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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