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Nov 16. 2023

저는 달릴 수 없었습니다

​5년 전 골절 사고로 저는 달릴 수 없었습니다. 빨리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신경 써서 걷지 않으면 약간 절면서 걷는구나,라고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걸음에 힘을 주고 나면, 집에 돌아와 다치지 않았던 오른발목에 통증을 느끼곤 했습니다. 가을이 너무 예뻐서 요즘은 거의 매일 걷습니다. 비록 달리지 못하더라도, 빨리 걷지 못하더라도.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정해진 시간이 좀 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90% 회복이 되어 잘 걸으니 너무나 감사하지요.


저는 달리기를 꽤 잘했습니다. 운동도 두루두루 잘했습니다. 체력장에서 특급, 또는 1급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학교에서는 주로 문예부 교사를 했지만, 배드민턴부 교사를 자청해서 몇 년간 한 적도 있습니다. 걸음이 군인처럼 씩씩하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고, 몸이 날쌔다는 말도 많이 듣고 살았지요. 나중에 몸살이 날지언정, 무슨 일을 시작하면 몰입해서 푹 빠져서 하는 오랜 습관이 저절로 바뀌더군요. 집안일도 개운하게 한꺼번에 몰아서 할 수 없었지요. 골절사고를 당했던 왼발목이 바로 신호를 보냈거든요.


"스톱!"

약간의 통증이 오고, 발등과 발목이 부어오르면 바로 족욕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당히 일하다 멈추고, 쉬어준 다음에 또 이어서 일을 하는, 몸을 아주 많이 아껴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몸살을 앓는 횟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조금씩 정리 정돈을 하니, 집안일이 더 즐겁고, 예전보다 집이 더 깨끗해졌습니다. 나의 몸에 맞추어 생활하다 보니, 도를 닦고 사는 기분입니다.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면서... 행복지수가 오히려 올라가고 있습니다.


골절사고 이후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인 장애인이든, 그분들이 느꼈을 주변의 시선이 뭔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감추고 싶어 했던 순간도 있었고, 따뜻한 배려에 가슴 뭉클한 적도 많았습니다. 목발 짚고 있던 저를 보고,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게 배려해 주며 버튼을 누르고 있던 꼬마의 얼굴도 떠오르네요.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골절사고 이후에 더 자주 느꼈습니다.


또한 받아들일 건 그냥 받아들이는 마음, 감사할 거리가 너무나 많다는 깨달음까지, 전 굉장히 큰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사랑하고 챙겨주는 가족과 친구들, 이웃들까지 제가 받고 있는 사랑이 너무 커서 눈물이 핑 돌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감동의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혜 에미야, 김장해서 보낼 테니까, 주소 문자로 찍어서 보내라."


시 막내 외삼촌의 전화였습니다.


"저 눈물 날 것 같아요."


전 그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그 순간 하늘나라 시어머님이 스쳐갔기 때문입니다.


"야! 김장하는 김에, 우리 지혜 에미 것까지 혀!"


그러셨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그러셨을 것 같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핑 돕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이전 13화 500원짜리 물티슈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