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Nov 15. 2023

500원짜리 물티슈 하나

몇 년 전, 주말에 교육이 있어 경주에 다녀왔다. 시외버스를 타고 올라오는데, 차가 심하게 막혔다. 불 꺼진 차 안에서 다들 깊이 잠이 들어있는 것 같았는데, 유독 내 앞에 앉아있는 한 분만이 손을 부채 삼아 계속 흔들고 있었다. 머리도 자주 쓸어 올렸다.


켜져 있던 히터를 끈 상태라 적당한 온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많이 더워하는 모습에 '갱년기 아주머니'신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부채로 이용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는 한 가지도 없었다.


아! 그 순간, 경주에 내려갈 때 터미널 매점에서 샀던 물티슈가 생각났다. 얼른 물티슈를 가방에서 꺼내 앞으로 건네주었다.


"저... 아줌마! 이 물티슈 쓰세요."


그분은 물티슈를 받자마자 얼굴과 이마와 목의 땀을 연신 닦아냈다. 보고 있는 내가 다 시원했다.


수원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짐을 챙겨 내리는데, 앞에 앉아 있던 분이 고맙다고 하며 내게 천 원을 쥐여주며 내 뒤를 따라 내렸다. 차에서 내린 후 나는 그분께 다시 천 원을 돌려주었다.


"됐습니다. 그냥 넣으세요. 안녕히 가세요."


터미널 옆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던 남편을 향해 뛰어가는데, 기분이 왠지 좋았다. 그냥 좋았다. 어쩌면 그 물티슈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이미 예정되어 있던 주인에게 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파마를 한 멀쩡한 젊은 남자를 아줌마라고 불렀는데도 우리는 둘 다 그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__^*

이전 12화 두 여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