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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Dec 07. 2023

너를 닮은 사람

[너를 닮은 사람]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매주 기다리며 보던 드라마가 끝이 났을 때 아쉬움이 매우 컸다. 고현정 배우와 신현빈 배우 두 사람 이외에도 연기파 배우들이 모여 걸작을 만들어냈다. 이 드라마가 끝이 나면 포스팅을 올리겠다고 생각했는데, 건드릴 부분이 너무 많아 글 쓸 엄두가 안 났다.


지독하게 불운했던 어린 시절을 증오했던 고현정은, 자기 인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에 어울리게 부유하고 젠틀하면서도 자기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다. 안정된 결혼 생활 중 갑자기 등장한 신현빈의 애인과 불같은 사랑을 하면서 모두가 깊은 상처와 고통을 겪어야 하는 어두움으로 이어진다. 결국은 분노에 치를 떨며 고현정을 목 조르는 불륜남을, 고현정의 딸이 만년필 촉으로 목을 찌르면서 모든 것은 끝이 난다.


가정을 가진 한 사람이 그 선을 넘었을 때, 그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이 드라마는 집착 같은 사랑의 끝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한지, 여느 드라마처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노란 나리꽃을 닮았던 그 싱그러운 여자 신현빈이, 좋아하는 언니 고현정과 자기의 남자로부터 배신당한 후 짙은 회색 빚으로 변해가는 그 처절함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이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두 배우의 대사가 오래 마음에 남아있는데, 하나는 고현정의 시어머니에게 똑똑한 의사 딸이 울부짖는 장면이다.


"엄마는 나 자랄 때, 한 번도 칭찬해 준 적이 없어요. 뚱뚱한 내게 모욕감을 주었고, 그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냐고 그랬었죠? 늘 악담만 듣고 자란 내게 이 남자는(평소에 아내를 폭행하던 변호사) 나에게 늘 달콤한 말을 해주었어요. 그 말에 내가 넘어간 거예요. 엄마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 안 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못된 놈 만나서 평생 매 맞고 살라고 했어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잣집의 똑똑했던 딸은 그런 아픔이 있었고, 결혼 이후 엄마의 저주에 딱 들어맞게 살고 있었다.


또 한 장면은, 신현빈의 엄마를 믿어주는 동네 식당 겸 카페 사장님의 말이다. 고등학생 때 사고를 쳐서 신현빈을 임신했던 엄마는 중졸이었다. 철없고, 천방지축이고, 사기 잘 당하는 캐릭터이고, 남에게 이용 잘 당할 만한 딱 그런 분위기의 여자다. 그녀가 자기를 이용했던 사기꾼을 경찰에 넘기고 본인 또한 자수하여 교도소에 들어간 이후, 그녀를 기다린다는 식당 아저씨에게 신현빈은 자기 엄마를 믿지 말라고 한다. 그때 아저씨의 말이 가슴에 팍 박혔다.


​"난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함부로 믿지 않고 살아요. 그런데 기다리려고요. 당해도 당해도 믿는 그 사람을 나도 한 번 믿어보려고요."


의심 없이 남을 잘 믿는 성향인 나의 한 부분을 보는 느낌이었다. 가끔 뒤통수를 세게 맞고 힘든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성선설을 믿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말이 끌렸던 걸까? 드라마가 삶이고, 삶이 소설이고 영화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소설을 읽으며 크게 공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도 작은 선택들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의 오늘을 만들고, 내 삶을 조각보처럼 이어 붙이게 해 준다. 되도록 그 선택이 나를 위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선택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내 선택으로  누군가를 너무 가슴 아프게, 심지어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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