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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Dec 10. 2023

음식과 나

어릴 때 나의 별명은 왕갈비였다. 많이 말랐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나는 음식을 먹는 데에 별 관심이 없었고, 배고프지 않을 만큼 그냥 조금 먹는 정도였다. 지금은 보통의 중년 여성처럼 두리뭉실한 몸매이지만, 나는 학교를 퇴직할 때까지 약간 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부업을 하셨다. 내가 일곱 살 때는 서울농대 근처에 살았는데, 대학생 여러 명 하숙을 쳤고, 그 이후에는 뜨개질과 가전제품 판매(열 개를 팔면 한 개를 주는 방식)를 하셨고, 이어서 하셨던 부업이 한복을 짓는 일이었다. 얇은 고급 옷감을 섬세하게 바느질하는 '깨끼 한복'을 주로 만드셨는데, 수고비가 보통 한복의 두 배 정도라고 했다.


아버지가 초등 교사였지만,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항상 무슨 일이든 하셨다고 한다. 내가 집안일을 할 수 있을 초등학생 시절, 일하는 엄마 대신 자주 쌀을 씻어 밥을 했고, 설거지를 했다. 중학교 때 배웠던 '매자과'라는 과자를 집에서 만든 기억은 있지만, 난 거의 음식을 할 줄 몰랐다. 그야말로 공부만 하다가, 직장 생활만 하다가 시집을 간 것이다.


결혼하자마자 처음부터 모신 시어머님은 매우 음식을 정성스럽게 하시는 분이셨다. 홀로 자식 삼 남매를 키워내셨고, 장애를 가진 남편에 대한 '울화'가 매우 심하셔서 부정적인 언어습관과 심한 짜증은, 따로 사는 큰며느리나, 함께 사는 막내며느리를 매우 힘들게 하셨다. 기본적으로 불신이 크신 분이셨기 때문에 반찬을 사서 먹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파는 반찬을 어머님은 '더러운 음식'이라고 표현하셨다.


음식 하는데 자부심을 갖고 사시는 어머님은 살림을 주도하셨고, 김치나 반찬도 내가 집에 없는 시간에 뚝딱 만드셔서 나는 어머님께 음식 만드는 것을 차분히 배운 적이 없었다. 음식을 잘해 훗날 조리사 자격증을 몇 개나 딴 후 전문가가 된 시누님이, 새댁 때부터 내게 설명을 하며 몇 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나는 새댁인데도 불구하고 한우갈비찜을 맛있게 잘 만들 수 있었고, 명절에 갈비찜을 만들어 형님네에 가지고 간 적이 많았다. 그런 내게 시누님은 '눈썰미가 있어 잘할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무리 눈썰미가 있었다 해도, 나는 자주 몸이 아프고 지쳤던 사람이라, 음식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는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니 음식을 만들지 않을 수는 없어 하기는 했어도, 하고 나면 너무 힘들어 늘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럴 때면 '사는 반찬'에 대한 아쉬움이 꼬물꼬물 마음에서 올라왔다.


정년퇴임까지 학교에 나갈 줄 알았지만, 나는 40대 초반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계속 무시하고 살았더니, 끝내는 '나 못 살겠다'고 그냥 나자빠지고 만 것이다. 워킹맘이 갑자기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나는 몸이 회복될 때까지 엄마가 아닌 환자로 살았다. 내 고단했던 삶에 남편과 삼 남매는 큰 피해자였다. 자연스럽지 못한, 학교와 시댁에의 지나친 책임감이 내 몸과 마음을 망가뜨렸고, 평범한 아내 노릇과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에 나는 심한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시어머님은 분가 후에 내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며 '니 몸만 생각하며 살라'고 자주 당부하셨다. 아픈 며느리가 불쌍했는지, 자주 반찬을 해다 주셨고, 시장에서 고른 옷을 사다 주시기도 했다. 퇴직 후 스승의 날에는 꽃바구니를 선물로 주시기도 하셔서 나를 감동시키셨다. 17년 합가 이후, 분가 후의 십여 년 동안 우리 고부는,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서로를 많이 아껴주었다.  그래서 돌아가신 지 6년이 지났어도 어머님을 생각하면 기분 좋게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이다.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머님이 나를 며느리로 맞이하셨을 때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마음이 여유롭고 감사로 가득하니, 음식 만드는 일을 즐겨서 한다. 시누님이 말씀하신 대로 눈썰미가 있는지, 레시피를 보면 쉽게 따라 한다. 음식 맛도 제법 괜찮다.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도 마음 깊이 깨닫는다. 만들 때 행복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맛있게 먹을 때 또 행복하다. 어제 처음 담근 동치미가 맛있게 익을 것 같다. 고맙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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