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초, 나는 학교 대표로 연구수업을 할 예정이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한 후 복직한 터라 좀 어리바리한 면도 있었으나, 내 열정은 학생들을 보는 순간 다시 활활 타올랐다. 나는 그 당시 5학년 3반 담임을 맡았고, 아이들은 활기차고 예뻤다. 다운증후군이었던 종호를 자기 동생처럼 아껴주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 나게 고맙다. 우리 반에는 현정이라는 백혈병 환자도 있었다. 키는 우리 학급에서 제일 컸지만, 몸이 가장 아팠던 현정이를 위해 나와 우리 반 아이들 모두는 각별히 신경을 써주고 살았다. 현정이는 몸이 아팠지만 즐겁게 학교를 다녔고, 꿈이 화가여서 그런지 미술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나는 연구수업 준비로 매우 바빴고, 매일 현정이를 위해 새벽 미사를 다녔다. 내가 현정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늘 그랬듯이 내 몸을 살피지 않고 열정 하나로 그 시간을 이겨내고 있었고, 몸이 따르지 않는 날은 몸살 약으로 버텼다. 국어과 수업을 위한 수업 안과 글짓기 지도 연구록은 이미 책자로 나와 교육청으로 들어가 있었다.
수업일 딱 3일 전에 내 혈압은 급격히 떨어졌다. 거의 실신 상태로 입원을 했고 혈압 수치는 40이었다. 학교 근처의 병원에 입원을 했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혈압이 40 아래로 떨어지면 '죽음'이라고 하시며 '과로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강조하셨다. 우리 반은 강사가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병원이 학교 근처라 반 아이들은 집에 가는 길에 들러서 종달새처럼 종알거리다 가곤 했다.
입원한 지 3주가 되어 내 컨디션은 많이 좋아진 듯하여 퇴원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아닌 병원 원장님이 병실에 들어오셨다.
"선생님, 이 병원에서는 퇴원을 하시고, 서울에 있는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올라가셔야겠어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 조치를 취했지만, 잡히지 않네요. 소견서를 갖고 바로 서울로 올라가세요."
내 병간호를 하고 계시던 엄마와 조퇴를 하고 온 남편은, 나를 데리고 바로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올라갔다. 그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백혈병 전문의셨던 김춘추 박사님을 만났다. 소견서를 읽어보시고 나서, 내 배의 이곳저곳을 눌러보시고 나서는, 우리 세 사람을 보고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비장이 굉장히 커진 걸로 봐서 백혈병으로 보입니다. 소견서의 백혈구 수치도 너무 높아요."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불렀고, 남편은 심한 현기증이 일어나 쓰러질 것 같았다고 나중에 말했다. 병실이 없다고 일단 수원에 내려가 기다리고 있으라는 간호사 말에 가슴은 더 답답해졌다. 내려가지도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데 김춘추 박사님이 화장실에서 나오셨다. 난 조금 전 처음 본 그분께, "저 좀 도와주세요. 병실이 없다고 내려가라네요."라고 했고, 잠시 기다리다고 하신 박사님은 어디론가 연락을 하시더니 13층 무균실에 자리 하나가 비었으니 그리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우리는 박사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13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백혈병 여자 환자들이 모여 있었다. 침대는 10개였고 출입구 쪽 한자리가 비어있었다. 거기에 있는 모든 환자와 보호자들은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머리에도 하얀 두건을 쓰고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그 광경에 심장이 마구 떨려왔다. 난 그곳에서 여고생이던 주희와 시골에서 올라온 예순 아줌마와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김보영 샘과 친하게 지냈다. 종합 정밀 검사와 골수검사까지 다 끝내고, 수원에서 내가 먹었던 약들의 성분 검사 표를 큰오빠가 다 갖고 올라온 후, 내가 받은 판정은 '약물 과다(몸살 약에 들어있던 스테로이드 성분)로 인한 백혈구 수치 상승'으로 나왔다. 나는 일주일 만에 퇴원을 했다. 퇴원하는 날에 마지막 보았던 주희는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고, 남은 두 분도 몇 개월 후 이 세상을 떠나셨다.
하......
그렇게 나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뼛속 깊이 깨달았다. 백혈병동에서 돌아오니 백혈병 환자인 현정이를 볼 따마다 더 마음이 아팠다. 그 이후 우리 현정이는 백혈병을 씩씩하게 다 이겨내고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경희대에 수시로 합격했다고 연락을 받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따져보니 지금 현정이의 나이가 30대 후반이다. 어디에서건 우리 현정이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하며 새 날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