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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pr 01. 2024

어머님을 위한 대청소 (2017.4.1)

어머님 퇴원을 준비하기 위해 시작한 대청소가 장장 10시간이 넘어서야 끝났다. 어제 아침 8시에 오시기로 약속한 세 분은 20분이 좀 지나 도착할 예정이라고 문자를 보내셨고, 그 시간에 오셨다. 팀장님은 남자분이셨고, 두 분은 여자분이셨다. 일하면서 특히 유의할 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팀장님의 질문에, 말기 암 환자이신 어머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어머님과 간병인이 주무실 안방과 안방 화장실을 신경 써서 해 주시라고 말씀드렸다.


일을 하면서 알고 보니, 42세 여자분은 몽골에서 왔고 한국말이 유창했다. 같이 온 30세 미나 씨는 그 여자분의 조카인데, 몽골에서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두 여자분이 서로 대화를 할 때는 몽고어로 했고, 나와 소통할 때는 통역을 해 주었기 때문에 전혀 불편함은 없었다. 전문업체 직원답게 아주 능숙하고 꼼꼼하게 일을 하시는 세 분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참 고마웠다. 일하시는 분들이 아침 8시에 도착한다는 본사 여직원의 말에 정말 당황했었는데, 하루에 두 집을 다니는 날이 많아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라고 여자분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어제는 한 집만 하는 날이라 더 꼼꼼하게 잘해드릴 수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10시 40분쯤인가 변기를 새로 갖고 오시는 사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전날 청소업체에 전화를 한 후, 아무래도 안방 화장실 변기를 새로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약속을 잡은 것이다. 15년 동안 사용하면서 몇 번 고치다가, 지금은 몇 군데 고장이 났음에도 교체를 미루고 있던 터라, 이참에 아예 서두른 것이다. 오후 세 시에 오실 거라고 하신 분이 오전 시간이 갑자기 비어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나는 바로 오셔도 된다고 하고,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치울 짐들이 많아서) 11시가 되자 배가 몹시 고팠다. 워낙 아침 밥맛이 없는 사람이라 일하는 분들이 도착하기 전에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남편은 출근을 하며 억지로라도 조금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중간에 미숫가루를 타서 먹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일을 하다가 그 사실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세 분이 도착했을 때 그분들 커피를 타 드리며 나도 한 잔 마신 게 전부였다.


나는 서울에서 일찍 출발했을 그분들도 시장하시겠다 싶어서 일찍 점심을 시켜 먹자고 했고, 그분들은 고맙다고 했다. 식사 주문 전화를 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곧 도착하실 변기 사장님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분께 전화를 걸어 짜장면과 짬뽕 중에 '짜장면'을 드시고 싶다는 말을 듣고, 바로 중화요리집에 전화를 걸어 탕수육 '대' 자와 짜장면 다섯 개를 주문했다. 한 25분 정도가 지나서 음식이 도착했고, 어제 처음 얼굴을 본 우리 다섯 사람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변기 사장님은 두 시간 후 가셨고, 남은 세 분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하셨다. 상담 직원이 말했던 5~6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내가 미안하여 그냥 가시라고, 거의 다 하셨으니 주말에 내가 조금만 더 정리하면 된다고 해도 힘들지 않다고, 웃으면서 계속 일을 하셨다. 세상에나! 그분들이 일이 끝났다고 장비 정리를 하신 게 오후 7시였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수고비를 조금씩 더 드렸고, 예쁜 귀걸이를 하고 있던 미나 씨에게는 귀걸이 두 개를, 42세 여자분께는 새 스카프 두 개를 드렸다. 비가 많이 오고 있어서 우산을 드리니, 차를 바로 앞에 대고 들어와서 괜찮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활짝 웃었다. 그분들은 어머님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말했고, 나는 '세 분은 꼭 성공하실 거'라고 덕담을 해 주었다.


우리 집이 15년 만에 새 집이 되었다. 어머님이 오셔서 잘 쉬셨으면 좋겠고, 이곳 한국이 너무 좋아서 평생 한국에서 사는 게 소망이라는 눈이 예쁜 미나 씨도, 나머지 두 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새벽이다.


다 잘 될 것이다.

다 잘 될 것이다.


내가 기도를 부탁했던 분들 중의 한 분이 어제저녁 내게 카톡을 보내셨다.


"채수아 님, 어머님은 참 복이 많은 분이시네요. 매일 새벽 수아님의 시어머님과 가족 모두를 위해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잘 흘러갈 겁니다. 사랑합니다."


난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고 눈물이 흘렀다.


※ 시어머님은 그해 6월에 소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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