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전투를 치른 기분이다. 형님 부부의 교묘한 반대를 이겨내고 드디어 어머님의 행복한 소풍인 하루 퇴원은 이루어졌다.
어머님이 통증 없이 우리 집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실 때, 난 거실 소파에 앉아 울기도 하고, 기도도 하고, 글 하나도 썼다. 밤이 새벽으로, 새벽이 아침으로 조금씩 변하는 걸 지켜보던 시간이었다. 어머님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그 무서운 통증 없이 병원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며, 난 또 하나의 꿈을 꾸었다.
어머님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당신 손으로 직접 키우신 우리 삼 남매 이외에도 얼마나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으실까? 다른 분들은 병원으로 오시더라도, 어머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 몸을 통해 나온 인연들이 모여, 짧은 시간이라도 어머님을 뵙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머님이 우리 집 안방의 퀸 사이즈 침대에 누워계실 때 우리 아이들이 그 옆에서 눕고 떠들고 뽀뽀하며 시간을 보냈듯이, 자기 사랑을 표현할 잠시의 시간이 어머니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내 심장이 기쁘게 뛰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님은 삼 남매를 낳으셨고, 손주 일곱을 두셨으며, 외증손주 둘을 두셨다. 그중에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어디 있으랴! 당신이 낳은 삼 남매도 그렇고 그들의 배우자들도 다 나름대로 상처가 있겠지만, 어머님의 인생은 그 상처를 다 덮고도 남을 정도로 위대하셨다. 어제 남편과 둘이 술을 마시며, 어머님은 정말 이 세상에서의 하실 일을 잘 마치신, 책임 있는 멋진 분이었다고 말했더니,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며느리도 참으로 멋진 사람이라고 남편이 '엄지 척'을 해 주었다.
세어보니, 모두 열다섯 명이었다. 다행히 우리 집 거실은 넓은 편이고, 이번에 어머님이 다녀가신 것처럼 밤에 나오셨다가 아침에 들어가시는 것이니, 다들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 와서 어머님과 몇 마디라도 나누고, 거실에서 차라도 한 잔 마시다가 가면 될 것 같았다. 그 영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남편에게 내 새벽 발상을 말했더니,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게 느껴져 자기도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단지...
어머님 퇴원을 그렇게도 필사적으로 막으셨던 형님 부부와 병원에 애인을 한 번 데리고 왔던 형님네 맏아들과 어머님 병원에 한 번도 안 왔던 둘째 아들, 그 네 사람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두 분은 내 이 좋은 계획을 또 얼마나 불편하게 생각하며 막으실까?'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이 부정적인 마음...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 우리 어머님은 앞으로 더 나빠지실 일만 남았다고 했다. 봄과 여름 사이라고, 어머님이 떠나실 때를 말씀하셨다. 갑자기 떠올랐던 나의 새벽 영상이 현실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어머님이 그날처럼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