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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pr 09. 2024

최우선 순위 (2017.4.9)

잠들어 있는 작고도 마른 한 여인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었다. 더 편히 주무시라고 우리 부부는 병실 화장실 불만 켜고 다른 불들은 다 껐다. 초저녁 시간이었지만, 어머님은 내가 가져간 물김치와 병원에서 나온 저녁 음식을 어느 정도 잘 드시더니, 30분 후 진통제를 드시고 깊이 주무셨다. 감사하게도 일주일째 그 무서운 통증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말기 암 환자에게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옆에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84세, 작년 여름까지도 반찬통에 서너 가지의 맛있는 반찬을 정성스레 싸다 주시던 어머님이셨다. 된장은 물론, 오곡밥과 보름나물도 늘 챙겨주시던 어머니셨다. 어머님은 늘 우리 일상에 가까이 계셔서, 집안을 둘러보아도 여기저기 어머님 손길이 많이 묻어있고, 길을 걸어도, 식당을 가도 너무나 많은 것들에 어머님과의 추억이 깃들어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난 후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리 부부는 긴 병실 의자에 앉아 평화롭게 주무시고 계신 어머님을 보고 있다가, 허리가 아프면 살금살금 복도로 나가 좀 걷다가 오는 걸, 서로 교대로 했다. 우리는 간병 아주머님이 집으로 가시는 5시 전에 미리 도착했다. 한 달 간병비 240만 원을 담아 감사하다는 몇 줄의 손 편지까지 쓴 봉투를 어머님께 드리며 직접 주라고 했다. 스무 살 차이의 나이지만, 언니 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두 분은 한 달 동안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동생, 수고 많았어. 집에 가서 잘 쉬다가 내일 만나."라며 다정스레 돈 봉투를 건네셨다. 아주머님은 활짝 웃으시고 고맙다며 봉투를 받으셨다. 아주머님이 가시고 나서 남편이 말했다. 천만 원을 받으셔도 될 만큼 수고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난 남편의 이 말을 그분께 꼭 전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도 몸이 많이 아파서 병원과 가까이 지내고 살았지만, 감사하게도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따스한 분틀과 인연이 되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다. 어머님 간병인이 그런 분이셨다. 어머님이 화장실을 자주 가시는 직장암 환자이셔서, 일주일에 6일 밤이나 잠을 설치시면서도 어머님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시는 천사 같은 분! 그분을 만난 건, 우리 어머님의 큰 복이다. 의사 선생님까지도 그리 마음씨가 좋으시니, 먼 길 떠나시기 전 그 두 분을 만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열심히 살아오신 어머님에게 수고 많았다고 주는 하늘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어젯밤 9시에 형님 부부와 교대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오늘 아침 9시에 교대하러 간다. 그동안 남편이 거의 토요일 밤을 지켰지만, 이틀 전 어머님 퇴원으로 둘 다 잠을 거의 못 잔 후유증이 있는 상태라, 이번에는 내가 형님 네로 전화해서 밤 시간을 부탁한 것이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남편이 이제부터는 격주로 하겠다는 용기를 내고 있다.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려 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어머님은 화장실에 계실 확률이 높다. 24시간의 반 이상을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실 정도로 자주 가시고, 그 안에서 긴 시간 계시는 분이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봄과 여름 사이' 어느 한 날, 어머님은 우리 곁을 훌쩍 떠나실 수도 있고, '여름과 가을 사이'로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어머님의 고맙다는 그 한 마디에 울컥하고, 새근새근 아기처럼 주무시는 그 모습에 감사하고, 혹시나 졸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바로 노크로 응답하시는 그 작은 것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다. 어머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우리 삼 남매, 아직도 어머님이 '울 애기들'이라고 부르는 삼 남매는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이틀 전에도 우리 집으로 잠시 퇴원하셨던 할머니께 예쁜 짓을 보였던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할머니를 만나러 병원으로 갈 계획이다. 우리 가족의 최우선 순위는  어머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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