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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pr 16. 2024

60세 사숙이

내 본명은 '규숙'이다. 채규숙, 별 '규', 맑을 '숙'! 아동문학으로 등단할 때 나를 아끼던 선배 언니가 지어주신 필명이 '채수아'이다. 나무 '수', 나 '아'!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난 효숙이와 혜숙이와 영숙이를 나는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시절엔 주로 도서관에서 만났고, 각자의 대학을 갔어도 우리의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신랑감을 서로 봐주고, 아기 백일잔치, 돌잔치를 서로 챙겨주고, 누군가 병원에 입원하면 위로해 주며 우리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었고, 어느새 부모님의 반 이상이 세상을 떠난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시어머니가 된 친구가 한 명 있고, 우리 모두는 곧 장모가 되고, 시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힘들게 생각했던 시어른들의 행동이 왜 그러셨는지 몸소 깨닫게 될 것이고, 아랫사람을 대하는 어려움이 있음을 서서히 알아갈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


아픔과 슬픔과, 그보다 더 많은 기쁨을 느끼며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나이 먹음이 조금씩 익어가는 과정이었으리라 우리 사숙이는 믿고 싶어 한다.


내 친구 효숙이는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며 밤마다 울었었다. 하루하루가 지치고 힘들어서. 말씨가 그리 곱던 아이가 두 아들을 키우며 어느새 거칠어지고 있는 자기 모습에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었다. 장손인 큰아들이 덕스럽고 맘씨 좋은 여자를 고르는 걸 보고 그렇게 행복해하더니, 벌써 손주가 둘이다.


내 친구 혜숙이는 우리 넷 중 가장 키가 큰 아이였다. 맏며느리 포스답게 맏며느리 역할을 무던히도 잘 해내고 산다. 혜숙이도 나처럼 신혼 초부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었고, 까칠한 성격의 시어머님을 모시느라 마음고생도 꽤 심했다. 그래도 잘 참고 모시고 살다가, 시어머님이 경로당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눈이 맞아 합쳐 살기로 약속을 하고 자식들 상견례까지 잘 마치고, 시어머님은 집을 떠나셨다. 시어머님 성격을 잘 알기에 얼마나 오래 사시려나 걱정을 했는데, 역시나 몇 번의 가출?(혜숙이네로) 후에 할아버지와 끝을 내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때 혜숙이는 잠시나마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다가 혼자 살던 막내 시누이 네로 가서 얼마를 사시다가, 학원 원장이던 시누이가 학원의 강사랑 결혼을 하게 되어 다시 혜숙이네 근처로 이사를 오셨다. 건강도 매우 좋으신 그 시어머님은 며느리 복 하나는 타고나신 분이다.


서울에서 교장을 하는 내 친구 영숙이는 우리 사숙이 중 가장 공부를 잘했다. 서울대에 갈 점수였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딸이어서 고민고민하다가 서울교대 4년 장학생으로 들어갔던 아이다. 자라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굉장히 큰 스트레스였는데, 감사하게도 시댁은 여유롭고 고학력의 시부모님에 인격까지 높은 분들이셨다. 명문여대를 나오신 시어머님은 똑똑하고 지혜로운 며느리 뒷바라지를 이 땅에서의 사명처럼 여기고 열심히 하셨다. 점을 보러 가셔서 점쟁이가 한 말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댁의 며느리는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니까 집안일에는 신경 안 쓰도록 많이 도와주셔야 해. 똑똑해도 성품이 이쁜 사람이야."


영숙이 시어머님은 대학 친구들을 만나면 왜 손주를 보며 사서 고생을 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끄떡 안 하시며, '손주 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니들이 아냐'고 오히려 더 당당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님은 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살림을 살뜰히 챙기시고, 손주들을 정성으로 돌보시며 퇴근한 며느리 쉬라고, 쪽지만 남기시고 사라지시곤 했단다. 영숙이가 표현한 시어머님은 행복하고 소녀 감성 풍부한 예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사랑 많으셨던 그분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영숙이는 멍했고, 나는 많이 울었다.


60세 우리 사숙이는 52년을 함께했다.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울었다. 그래서 우리 사숙이 카톡 방에는 계속 이런 글이 올라온다.


"우리가 친구라는 게 너무 좋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힘이 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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