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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May 07. 2024

4인실에서 있었던 일

난 결혼 이후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을 많이 했다. 백혈병 환자 아홉 명과 함께 있던 여의도 성모병원 무균실 말고는 나머지 입원은 모두 1인실이었다. 대부분이 과로와 약으로도 듣지 않는 극심한 두통 증세였기 때문에 소음이 전혀 없는 1인실에만 있었다. 그때의 발목골절 사고 후 응급실에서도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1인실이야, 여보!"


남편은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원 수속을 밟는데, 1인실은 불가능하다고 관계자가 말했다. 1인실에 난동을 부리는 환자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난 비어있는 4인실로 들어갔고, 상황이 가능하면 바로 옮기기로 했다. 다음날 수술을 했고 난 심한 진통을 견디느라 남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간호사가 와서 아직도 난동환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다음 날 상황이 종료가 되었는지 1인실로 옮길 거냐는 물음에 난 가지 않겠다고 했다. 뭔가 하늘의 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내 통증이 잡히며 안정이 되자 4인실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내가 지인들의 다인실 병문안을 갔을 때 느끼지 못했던,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감사하게도 발목이 부러진 사고가 난 순간부터 평화로움이 유지가 되어, 그 소음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한 환자는 조선족 사업가인지 중국말과 한국말을 섞어 쓰면서 계속 큰 소리로 전화를 했고, 한 환자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말을 시작하면 부정적인 기운이 세게 묻어나는, 좀 거만한 말투였다. 다들 커튼을 치고 누워있는 상태이니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각자 상대방의 모습을 상상으로 만들어 놓고 말소리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잊지 못할 환자가 있었다. 정말 놀라웠고 내 가슴이 종종 시려왔던 그녀의 말투! 끊임없이 말을 하고, 계속 화를 내고, 계속 투덜대며 보호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당신은 그것도 못해? 아휴, 답답해! 내가 미쳐, 미쳐!"


"00야! 넌 긁는 거 하나도 못하니? 정말 징글징글하다. 이 멍충아!"


남편과 딸에게 계속 악담을 퍼붓던 그녀는 마침내 내 퇴원 전 날은 아들과 대판 싸웠다. 간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서 민원을 넣으라는 엄마의 말에 아들이 발끈하고 대들었다. 제발 좀 그만하라고. 돌아온 것은 쌍욕이었다. 아들은 한 마디를 더 하고 병실을 나가버렸다. 속이 상한 여자는 이틀 출장을 다녀온다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엉엉 울면서 아들 욕을 마구 해댔다. 남편은 중간에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화와 독이 뿜어져 나왔다. 가족의 긴 고통의 시간들이 내 마음에 다가왔다. 집안의 햇살이 되라는 의미 '안 해(아내)'를 그녀는 알고 있을까? 엄마의 자리, 가족의 의미를 뼛속 깊이 깨달은 시간이었다. 또한 내 남편과 아이들을 돌아보며 감사가 더 깊어진 시간이었다.


잊지 못할 4인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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