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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May 22. 2024

인연 보자기

사람과의 불화를 잘 견디지 못했던 나는, 나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두루두루 잘 지내기 위해 무진장 노력하며 살았다. 내 마음이 어떤지는  귀 기울이지 않고,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꽤 많이 힘들게 했을 거라 생각된다. 10여 년 전에 알게 된 세계적인 영성 작가인 웨인 다이어의 책들을 접하면서 꼭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다. 그 말은 내 삶에 편안함과 담대함과 함께 삶의 여백을 주었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시기였다. 몇 년 전, 우연히 유튜브 강의에서 이런 내용을 들었다.


"우리는 보통, 속 깊게 사귀던 사람과의 관계가 나빠졌을 때 굉장히 큰 상처를 받는다. 정성을 기울이고 공을 들인 사람이라, 더 그럴 것이다. 깨어진 관계를 부여잡고, 그걸 곱씹고 또 곱씹으며 끌탕을 하느라 긴 시간 동안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제는 그러지 마라. 그 사람과의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마음을 바꾸어라. 돌이켜보면 좋았던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도, 관계의 끝부분만 기억하려고 한다. 거기까지의 시간을 보자기에 꽁꽁 싸서 그 자리에 가만히 놓아두고, 그냥 떠나라.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어두움에 빼앗기지 마라."


이 정도의 내용이었다. 내 인생에도 그런 존재가 몇 명 있었다. 내가 새롭게 배운 보자기 이론이, 나에게 굉장한 평화를 주었다.


내가  평화로운 것처럼 상대방도 평화롭게 잘 살기를 빌고 있고, 이해불가의 사람이 아닌, 그 사람도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고, 어쩌면 '한쪽의 지나친 희생과 배려'는 순리에 맞지 않으니, 나를 위한 사랑으로 하늘이 주신 축복일 수도...  생각의 전환으로 나는 더 이상 관계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고, 내게 남는 건 또 '감사'였다.


상대방이 잘못한 것임에도 당당히 사과를 요청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부드러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배려라고 굳세게 믿고 살았지만, 그런 관계들은 희한하게도 다 정리가 되었다. 서로가 아껴주고, 내가 잘 될 때 나보다 더 기뻐하는 인연들이 나를 따스한 에너지로 감싸주고 있다. 그 에너지가 나를 더욱 건강하게, 나를 더 밝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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