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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May 28. 2024

반갑다, 푸른 혈관아!

여고시절에 특별한 한 아이가 있었다. 부잣집 딸이라는 소문처럼 그 아이 엄마는 학교 운영위원회 간부였고, 행사에 오시는 날에는 일부러 우리 반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 눈에 띄게 다녀가셨다. 그 아줌마는 얼굴에 잡티 하나가 없었고 약간 살이 오른 흰 피부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난 그 아줌마의 야한 모습을 볼 때마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소박한 우리 엄마가 그 아줌마보다는 더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는 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갖고 다닐 때였는데, 그 아이의 반찬은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한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반찬들도 꽉 채워져 있었다. 원래 밥맛이 없었던 나는 그게 그리 부럽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귀티가 나는 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손 모델의 손처럼 하얗고, 조각 같은 그 손에는 도드라진 혈관이 전혀 없었고, 엷은 푸른빛이 가늘게 살짝 보일 뿐이었다. "너 집에서 일 많이 하니?" 소리를 자주 듣던 나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순간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 있다.


발목 골절로 수술을 했었을 때 내 다친 왼발의 발등은 계속 찐빵처럼 부어있었다. 심할 때는 '저러다 터지는 게 아닐까?'걱정이 될 정도의 날도 있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부기가 빠지고 있다가 어느 날 보니 푸른 혈관이 살짝 보였다. 너무나 신기하고 고마웠다. 어제 보니 한 혈관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오른발 등에 비해 한 1/3 정도의 혈관이 보이는 왼발 등을 바라보며 "고맙다,애썼다,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살다 보니 그런 날이 있었다. 감추고 싶었던 것이 그렇게도 반갑게 느껴질 수 있다니, 매일매일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마치 소꿉장난을 하며 눈을 깜빡거리고 까르르 웃어대는 어린 여자아이처럼.


사진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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