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May 20. 2024

닮아가는 부부

몇 년 전 가수 최진희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북한 공연도 나왔고, 바쁜 스케줄의 하루하루 모습도 나왔고, 성격 좋아 보이는 남편의 모습까지도 보았다. 그 남편은 최진희의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1등 팬이었고, 늘 피곤한 최진희의 컨디션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살고 있었다. 이혼한 후 어린 딸과 살고 있을 때, 그 딸이 결혼하라고 먼저 말할 정도로 지금의 남편은 천생연분으로 보였다. 내 가슴에 팍 꽂힌 최진희의 말은 이랬다.


"제가 굉장히 폐쇄적이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 만나고 제가 점점 밝아지더라고요."


방송이 끝나고 잠시 우리 부부를 떠올려 보았다. 연애 시절에 내 핸드백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 난 그 모습이 굉장히 낯설고도 고마웠다. 교사의 딸로 태어난, 직업이 교사인 나는 어떤 '틀'에 나를 가두고 살았다. 특히 옷에 대해서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어서, 옷을 사러 가면 옷가게 주인이 늘 물었다. "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세요?"


난 교사로 근무하면서 민소매 옷을 입어본 적이 없고, 무릎 위 치마를 입어 본 적이 없고, 맨발로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이 어린 아가씨 선생님들이 예쁜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는 게 참 이뻐 보여도 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옷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퇴직 후 옷차람이 많이 자유로워졌다. 옷차람이 편해지니 삶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남편을 만나 체면치레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남편은 나를 만나 성격이 점점 밝아지고 유머가 풍부해졌다. 한 시댁 행사에서 남편의 사촌누님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말은 하고 살아? 좀 답답하지 않아?"


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도 잘하고, 엄청 재미있다고 하니, 그 형님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우하고 상처 많은 가정이었으니, 남편은 바깥사람들이 아닌 친척들 앞에서는 기가 많이 죽어있었던 게 아니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변화를 일으키며 34년을 잘 살아온 게 분명하다. 그동안 서로에게 상처를 종종 주기도 하고, 부부 싸움도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하고 살았지만, 점점 싸울 일이 없어지고 있으니 이 정도면 잘 산 부부가 아닐까?


​사진 : 네이버 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