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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un 08. 2024

두 삼성맨

큰아들에 이어 막내아들까지 삼성맨이 되었으니, 우리 시어머님의 어깨는 이만큼 솟아오르셨을 것이다. 충청도 시골에서 올라와 단칸방에서 삼 남매를 키우며 피눈물을 흘리셨다고 어머니는 내게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남편이 기둥이 되지 못하는 집에서 네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머니의 하루는 얼마나 바쁘고 힘드셨을까?


주변에서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가족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으니, 어머님의 노고가 많이 녹아내렸으리라. 아주버님도 남편도 회사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굉장히 컸다는 걸, 두 사람의 대화에서 자주 느낄 수 있었다. 부장까지 근무를 하다 퇴직하고(진급이 쉽지 않았다) 아주버님은 중국 회사의 사장으로, 내 남편은 공기업 간부로 직장을 옮겼다. 얼마나 삼성이 고마웠으면, 퇴직 후에도 차를 삼성으로 바꾸었고, 내 첫 차도 삼성차로 사주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말했다. 너무나 고마운 삼성이어서 이렇게라도 보답하고 싶다고.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남편은, 마음속 아쉬운 점 하나가, 유학을 가고 싶었는데 못 간 것이라고 했다. 그 소망까지도 삼성은 들어주었다. 직원 연수에 큰 공을 들였던 삼성은, 미국에 있는 USC 대학원에서 홍보마케팅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물론 6차 관문을 통과한 30명에게만 주어진 특혜였다. 기간은 몇 개월에 불과했지만, 남편은 그것을 두고두고 고마워했던 사람이다.


내가 교직에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것처럼 남편도 삼성이라는 회사를 많이 사랑했다. 그래서 직장 이야기를 나눌 때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분명 복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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