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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un 28. 2024

엄마의 팔순 모임과 11만 원(2015.6.28)

기침을 콜록거리며 엄마의 팔순 모임 장소에 갔습니다. 어제 배달된 꽃바구니를 작은 올케언니가 들고 오더군요. 엄마를 모시고 오면서요.


사 남매와 그 배우자와 아홉 아이들(저희만 셋 ㅎ)이 모여 엄마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드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쪽 편에 사 남매가 잠시 모였지요. 사 남매의 돈 봉투를 하나로 모아 제가 대표로 짧은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거야,라는 말을 오빠와 여동생에게 하다가 목이 메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 사 남매에게 고마워하실 거야."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대신 눈물이 났습니다.


환한 엄마의 미소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제 마음까지도 환해지고 있었습니다. 마당이 넓은 멋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친정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친척들을 초대할 계획도 있었지만, 엄마의 강력한 의지로 가족만의 소모임으로 정했건만, 아쉬움이 크신 외숙모님과 사촌 동생들이 오후에 집으로 놀러 왔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요. 한 동생의 와이프가 회사에 출근을 해서 그 동생은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 때문에 힘겨워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남매의 손을 잡고 문방구에 가자고 꼬셨습니다. 셋이서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횡단보도 옆에서 허리가 90도로 굽어진 할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유모차에다 실어 온 상추를 땅에 내려놓고 계셨습니다. 마음에 짜르르 아픔이 내려앉더군요.


두 꼬마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 문방구를 향하면서 온통 할머니 모습만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가진 현금은 없고 스마트폰과 카드 하나가 제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저는 먼저 은행 ATM기로 가서 현금을 찾았습니다. 문방구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사주고 다시 걸어 할머니 앞까지 왔습니다.


"할머니, 상추 얼마예요?"


"한 봉지에 2천 원"


"그럼 다섯 봉지 주세요"


할머니는 봉지에 여린 상추를 담으셨습니다.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제가 담을게요."


전 나머지 네 봉지에 상추를 조금씩 담았습니다.


"할머니, 이건 상춧값 만 원이에요 그리고 이 봉투에 들어있는 10만 원은요, 할머니 고기 사서 드세요.  건강하셔야 해요."


"이런 고마운 사람이 있나..."


할머니는 봉투를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손을 한 번 꼭 잡아드리고, 인사를 하고 친정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참 행복하고 따스했지만, 마음 한켠이 아프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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