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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un 30. 2024

아버지의 유언(2016년 엄마의 퇴원 후)

거의 4년을 중풍으로 누워계시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유언이 없으셨다. 왜냐하면 마지막에는 혀까지 마비가 되셨기 때문이다. 친정에 가면 말 못 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드리거나 손을 꼭 잡아드릴 뿐, 대화는 하지 못했다.


엄마의 입원으로 병원을 드나들며 아버지의 유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말씀은 못하셨지만, 떠나시며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 사 남매를 앉혀놓고 수없이 하셨던 그 말씀들이 유언이 아니었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기적으로 살지 마라"


"조금은 손해 보며 살아라"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라"


"성실하게 살아라"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게 살아라"


이것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지만, 결론은 '사람답게 살라'는 말씀이셨다. 그런데 이것들이 아닌,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씀이 "너희들을 위해, 나를 위해 헌신했던 엄마를 부탁한다"였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만일 그것이 아버지의 '무언의 유언'이었다면, 요즘의 우리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흡족하게 바라보실 것만 같다.


오늘은 엄마를 간호하는 내 당번 일이다. 엄마 퇴원이 임박했으니,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한 번 정도 당번이 더 남아있을 수도 있다. 어제는 엄마가 화장실도 가셨다고 동생이 전했다. 오늘은 또 얼마나 좋아지실지 기대가 된다.


움직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따라오는 심한 어지럼증도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드시고 싶은 음식을 많이 드셔도 된다는 허락의 말씀에, 당번 일에 병원을 향하는 내 손은 점점 푸짐해진다.


도가니탕, 갈비구이, 호박나물, 무나물, 물김치, 샐러드가 오늘 엄마가 드실 음식이다. 평소에 엄마가 맛있게 드셨던 것들을 떠올려 정한 것이다. 며칠 전에도 맛있게 음식을 드시고 활짝 웃으시는 엄마를 보며 행복했다. 엄마는 나를 키우며 잘 먹는 내 모습에 얼마나 많이 행복하셨을까?


엄마! 오늘은 큰딸과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많은 이야기 나누며 좋은 시간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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