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2016년 7월 일기)

어제 1박 2일 휴가를 다녀오며 시어머님을 만나고 왔다. 가기 전 어머님을 모시고 갈까, 몇 번을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엄마 입원으로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온전히 쉬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짧은 여행을 마치고 시어머님께 가서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갈비를 사드리고 왔다. 도착하기 전, 현금지급기에서 어머니께 드릴 돈을 찾은 후에 돈 봉투에 짧은 편지를 썼다. 늘 쓰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어머니께'라는 첫 문구 앞에 '사랑하는'이라는 네 글자를 더 써넣었다. 친정 엄마에게는 항상 쓰던 글자, 엄마를 만나고 오는 길에 항상 하는 말인데, 왜 어머니께는 그동안 쓰지 않았을까.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아니라고 바로 대답한다.  쑥스러움 때문일 거라 생각하다가, 내 마음 깊은 곳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어서일까, 생각해 본다. 아닌 것 같다. 결혼 후에 난 어머님 같은 유형의 사람을 처음 보았다. 어머니는 항상 급하셨고, 말이 거칠었고, 마음에 여유가 없으셨다. 그래서 옆에 있으면 늘 불안했다. 거친 말이 툭 튀어나올 때는 심장이 벌렁거리기도 했다. 형님도 고모도 두 아들도 어머니 앞에서는 늘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랬던 어머님께서 손주들 앞에서는 늘 다정다감하셨다.  내가 본 할머니들 중에 손주들에게 가장 잘해주시는 분이셨다. 그런 분이셨기에 우리 삼 남매는 친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어쨌든 시어머님의 존재가 내게는 늘 부담이었고,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난 어머님과 친해지기 위해 자주 대화를 나누려고 애썼다. 어머님은 며느리들에게 늘 무거운 존재셨고, 내 일생 그 무거움을 걷어내는 것에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내가 어머니께 마음을 주고 공을 들인 이유는, 어머니의 일생을 이해하려고 했고, 그 일은 꽤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어머니의 한 많았던 삶을 생각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도 했다.

열여덟 살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삼 남매를 반듯하게 키워내신 분! 남편은 장애가 있어 평생 요양 생활을 했기에, 어머니는 집안의 가장으로 세상의 풍파를 홀로 맞으셔야 했다. 삶이 버거워 시골 마을 물가에서 서성거리다, 물이 무서워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던 적도 있다고 하셨다. 어머님의 까칠함은, 그 큰 공을 생각하면 무조건 인정해 드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삼 남매를 똑똑하고 반듯하게 키워 세상에 내놓으신 어머님은, 이제 당신 스스로를 아름답게 만드시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예전부터 갖고 계셨던 정스러움은 여전하시고, 당신의 말투와 행동으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신다는 걸 깨달으셨는지, 어머님의 표정과 말투는 점점 따스하고 부드러워지고 계신다. 난 10여 년 전부터 어머님이 화를 내시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어머님은 그야말로 고운 자태를 유지하고 계시고, 웃는 모습도 그렇게 예쁘실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스스로의 인생을 '승리자'로 만들고 계신 분이다.

난 어머니가 참 좋다. 곱게 나이 드시는 그분의 높은 인격이 존경스럽다. 전화 통화도 차가운 말투로 끊으시는 게 당신의 오랜 습관이셨지만, 지금의 어머니는 "전화해 줘서 고맙다"로 마무리를 하신다.  나는 이제야 '사랑하는'이라는 네 글자를 어머니께 처음 썼으니, 말로도 표현할 날이 다가올 것이다. 내 삶의 멘토는 항상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셨는데, 시어머님도 내 삶의 멘토가 되어가고 계신다. 이런 분들이 내 마음에 살아계시니, 앞으로의 내 삶도 아름답게 펼쳐지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