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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ug 29. 2022

 "나처럼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라

10여 년 전 퇴직 후,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하는 기간을 가졌다. 병 휴직 때부터 다니던 대학병원을 다녔고, 매일 약을 먹었으며, 교사가 아닌 엄마와 아내로만 사는 시간이었다. 비록 몸은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지만, 평범한 엄마 노릇을 하는 일상이 꽤 감사했다. 그중에서 <KBS 아침마당>을 매일  수 있다는 건 큰 '감사 거리'였다. 좋은 내용이 많아 메모를 하며 듣는 경우도 있었다. 그 메모장에 적혀있는 '스스로 명당이 되어라'라는 강의는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자기의 삶에  한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생각보다 많은데, 자기의 자식들은 자기 같은 삶을 살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절대로 나처럼 살지 말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알게 모르게 세포 하나하나가 부모를 닮아가기 때문이다. 평소에 자녀들에게 "나처럼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라.


너무나 부끄러웠다. 천직으로 여겼던 교사 생활을 멈춘 나, 그동안 늘 피곤하고 아픈 모습을 보이며 살아온 나, 열정이 사라져 버린 회색빛으로 둘러싸인 나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하던 사람이 듣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나누고 베풀고 살아라. 남을 배려해라. 정직해라.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아버지가 몸으로 실천하고 사셨던 그것들을 자식 앞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그렇게 자란 사 남매여서 우리는 자동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는 사람처럼 아버지 비슷한 행동을 하며 살았다. 가난하고 고생 많으신 시어머님을 잘 모시고 살라던 당부는, 아버지로서는 당연한 말씀이셨던 거였다. 나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내 앞에서 굳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던 '모시고 살고 싶다'라는 말에 나는 바로 그러자고 했고, 내 말을 들으신 아버지는 그걸 '사람의 도리'라고 하신 것이다. 그 이후 건강했던 딸이 결혼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빼빼 말라가고, 자주 아픈 모습을 보였을 때,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온실 속 화초 같아서 내보내기 겁난다'라고 결혼식 아침에 내 절을 받으신 후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아버지나 나나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아버지 성향을 그대로 닮은 나는, 지나치게 측은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제자들을 사랑으로 평생 교육하신 분이셨기에, 나 또한 아버지 흉내를 내며 살았다. 그런 내 교사 생활이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좋은 인연들을 생각하면 분명 감사한 마음이 들지만, 조화로움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람 방식은, 지혜롭지 못했다고 확신한다.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말한다. 스스로를 아껴주라고, 스스로 당당하라고, 때로는 할 말을 하며 살라고. 자기 일에 선을 다하는 게 몸에 밴 아이들, 친구들과 너무나 잘 지내고 있는 아이들, 잘 웃는 아이들, 때로는 할 말도 할 줄 아는 아이들, 엄마의 삶을 가슴 아파하고 애썼다고 말해주는 아이들!


나는 은연중에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은 반반 치킨처럼 적절히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 같다.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무엇보다도 자기를 아끼고 스스로를 많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가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나눔의 기쁨'은 앞으로도 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늘나라에서 중년의 큰딸을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퇴직 후 어두움에 빠져있던 딸이 가슴 아파 꿈길에 다녀가셨던 나의 아버지! 덕분에 나는 나를 정성으로 키워주셨던 아버지 사랑을 기억해 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사람 좋아하고, 제자들을 가슴으로 품으셨던 분, 늘 책을 즐겨 읽으셔서 그 에서 함께 책을 읽던 나의 어린 시절,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신 나의 아버지! 난 그분을 존경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사랑,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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