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공군 장교인 아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사람들이 나한테 섬세한 사람이래. 그리고 나한테 고민 상담을 청하는 친구들이나 장병들이 많아.'
나는 웃음이 났다. 내가 살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었으니까. 섬세한 사람!
어머님이 뭘 원하시는지, 부모님이 뭘 원하시는지, 남편과 자식들이 뭘 원하는지, 학생들이 뭘 원하는지, 내게 달린 그 무엇이 늘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니 내 몸이 피곤도 했겠지만, 상대방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행복했다. 그러니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친정에 가면, 혼자 사시는 엄마에게 뭐가 필요한지 나는 바로 보였다. 가전제품이 고장이 났는지, 행주를 더 사야 하는지, 화장실 변기 커버를 교체해야 하는지, 그런 게 내 눈에 보였다. 그래서 난 친정에 가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우리 큰딸 최고'라며 엄지 척을 해주셨다.
둘째 아이인 아들을 낳고 육아휴직을 3년 한 후에 복직 교육을 받으러 '율곡 교육원'이라는 곳에 갔었다. 학교로 복귀하는 데에 불안감을 갖는 사람도 있었고, 새 출발에 들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아주 커다란 온돌방에 열 명 정도의 교육생이 함께 생활을 했었다. 강당에서의 빡빡한 교육과정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그 시간은 정말 천국이었다. 그때 우리 방에 임신을 한 사람이 있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아이가 임신된 것이었다. 임신 초여서 입덧이 매우 심한 상태라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뭐 도와드릴까요?"라는 질문이었고, 그녀의 부탁을 힘들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었다. 둘째 날이었던 것 같다. 속이 울렁거리던 그녀는 입덧이 가라앉지 않자 내게 사이다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걸 마시면 좀 가라앉을 것 같다고. 나는 다른 방에 있던 내 친구 하나 데리고, 10분쯤 걸어가야 있는 작은 시골 가게에 가서 사이다와 과자를 사다 주었다. 그녀는 사이다를 마시고 과자도 조금 먹었다. 컨디션이 한결 나아졌다고 내게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3박 4일의 교육과정을 끝내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려는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감사해요, 선생님! 제가 복이 많아 선생님처럼 섬세한 분을 만났네요. 선생님은 정말 영부인감이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만난 적도 없고,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세 살 아이였던 아들의 '섬세한 사람'이라는 그 말에 난 그때 이야기를 해주며 웃었다. 내 남편이 대통령이 될 생각이 0.00001%도 없는 사람이기에, 전혀 가능성이 없는 말이지만, 그녀는 내게 엄청난 말 선물을 주고 떠난 것이다.
섬세한 사람, 섬세한 사람, 섬세한 사람! 그 말을 속으로 읊조리다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바로 떠올랐다. 섬세하셨던 우리 아버지! 사람 사랑하기에 섬세하셨던 우리 아버지! 그래서 돌아가신 후에도 제자들과 자식들이 몹시도 그리워하게 만드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