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습관대로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브랜드 네이밍 일을 하는 사람이라, 보통 주변을 돌며 간판 사진을 찍곤 하기 때문에, 약속 장소의 이른 도착은 내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어제는 그런 장소는 아니었고, 주변 경관이 꽤 아름다운 곳이어서 잠시 산책을 할 생각이었으나, 한 통의 전화로 인해 그 꿈도 깨지고 말았다.
"나야 나! 잘 지내니?"
대학 동창이었다. 결혼 후 아이를 하나 낳고,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학교를 가장 빨리 그만둔 친구였다. 그 친구와는 그 아들의 돌잔치 이후, 항상 장례식장에서만 만났던 것 같다. 우리 시어머님 장례식에는 그 친구가 오지 않았다. 몸이 많이 아픈가 보다, 그리 생각하고 잊고 있다가 어제 전화를 받은 것이다.
"너를 그렇게 괴롭히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구나, 했어. 니 문자를 받고."
갑자기 골이 띵했다. 이 친구에게 내가 속 이야기를 했던가? 언제 했지? 아마도 친구 시아버님 장례식장에서 말했던 것 같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 나는 분가 후에 어머님과 좋은 관계로 잘 지내다가 돌아가셨다고, 짧은 시간에 정리를 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너무나 다행이라고 말하며, 자기는 아직도 시어머님이 고생하시고 산 건 이해하지만, 마음속에 미움이 많이 있다고 덧붙였다. 친구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지는 않았지만, 내 기억에 가까이 살며 자주 만나며 살았던 것 같고, 맏며느리지만 지금도 모시고 사는 느낌은 아니었다. 건강은 어떠냐는 내 질문에 아직도 많이 좋지 않고, 그리던 그림도 끊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하나 있는 아들이 며칠 전에 군대에 갔는데, 야단을 너무나 많이 친 것들이 생각나서 많이 괴롭다고 하더니, 엉엉 울었다. 나는 당황했고, 아이들 키우는 엄마들, 다 그렇지 뭐,라며 달래주었다.
워낙 뜸하게 만났던 친구라, 난 그 아들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전교 1등을 하던 수재, 특목고에 가려다가 일반고에 가서 최상위권을 달리다가, 초등 교사가 되겠다는 아들과 갈등이 심했었다는 정도. 그 아들은 자기 뜻대로 초등 교사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그만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하니, 부조금을 만나서 주려고 하다가 몇 년이 지나고 말았다며, 문자로 계좌번호를 꼭 찍어달라고 했다. 난 괜찮다고 말하다가,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약속 시간에 지인을 만나 중요한 대화에 몰입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친구의 울음소리가 다시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아직도 불편해 보이는 고부 사이가 안쓰러웠고, 자기 고집대로 교대에 진학한 친구의 아들이 무척 대견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