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막내아들이니 나는 당연히 막내며느리지만, 우리 부부는 늘 맏이처럼 살았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막내가 맏이로 살다 보니 보통 집안에서는 느끼지 못할 어려운 문제들이 종종 발생해서 마음고생도 꽤 컸다.
5년 전, 어머님이 말기암 판정을 받으신 후, 아주버님은 평생 모시지 못한 한을 푸시려는 듯, 맏이 노릇을 하려고 애를 많이 쓰셨다. 우리 부부는 그 모습을 매우 고맙게 여겼고, 서로 분담하며 힘을 모아 어머님을 지키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아주버님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애는 쓰고 있는데, 어머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시간을 기다리시고, 컨디션까지 좋아지시니 그것이 몹시 속상하고 힘드셨던 것 같았다.
"엄마는 너희 가족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그 당시 남편과 술을 마시던 아주버님이 하신 푸념이다. 남편은 무슨 소리냐고, 어머니에게는 '형님이 최고'라는 말로 위로해 주었다고 했다. 한 번도 모셔보지 않았던 분이 일주일에 며칠 어머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내 앞에서 하셨다.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신 날, 아주버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어머니 퇴원은 없을 거라고, 여기에 계시다가 장례식장으로 가시게 될 거라고. 하지만 입원 한 달 후 어머님은 소원하시던 퇴원을 우리 집으로 하셨고, 다시 입원을 하셨다. 그 이후 어머님의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셔서 거의 세 달 정도를 병원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이 있었지만, 되도록 삐걱거리지 않기 위해 되도록 아주버님께 순종하고 따르며 지냈다. 그런데 장례식이 끝나고, 아주버님 부부가 여기서 밝히기 어려운 치졸한 행동을 해서 우리 부부를 몹시 화나게 만들었다. 우리 부부는 어머님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며 부딪힘이 없이 지나기를 바랐지만, 아주버님 부부의 유치한 행동이 또 이어졌다. 남편과 나는 때가 왔음을 느꼈고, 용기를 낸 남편은 퇴근 후 장문의 카톡을 아주버님께 보냈지만, 아주버님은 답을 보내지 않으셨다.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을 한다. 우애 있게 잘 살라고 유언을 하셨건만, 삼우제 점심 식사 후 '앞으로 명절과 행사를 각자 하자'고 선언하고 떠나신 형님과, 형님 뒤를 따른 아주버님으로 인해 지난 5년간 의절 상태로 살아가는 자식들을 어머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어머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실까. 생전에 내게 자주 말씀하셨듯 어머님은 이러실 것만 같다.
"에미야, 니 몸 하나만 신경 쓰면 되는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