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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l 28. 2022

인계라는 지옥

독립 1주차, 입사 2개월차.


신규간호사, 너무 많은 것을 머리에 넣어야 했고 너무 과분한 것을 가슴으로 견뎌내야했다.


내가 다닌 병원에서는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었다. 하여 환자 상태를 집에서 직접 리뷰할 수 있었어서 출근 시간을 과하게 일찍올 필요가 없었다.


즉, 집에서 어느정도의 인계준비를 해갈 수 있었다는 것.

늘 말이 많았다.

출근 시간이 앞당겨질일도 없고 인계도 최소화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집에서까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었다.




나와 내 동기들은 던져지듯 독립을 했다.

입사한지 2달도 채 되지않아 독립을 했는데, 입사한지 첫 2주간은 OT기간으로 학생간호사처럼 선생님들을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지 직접적으로 환자를 보지는 않았다. 즉, 이후 약 2-3주가량 동안 하드 트레이닝받아 내가 어싸인(담당)하는 환자가 한 명에서 4명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늘려나갔다. 그렇게 우린 빠르게 독립했다.



독립하고 6개월간은 그저 지옥같았다. 특히나 인계는 정말 지옥같았다. 아무리 어플리케이션이 발달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이 간호사가 환자파악을 잘 했는가를 보려면 인계하는걸 보는 수 밖에 없다.


신규간호사는, 뭐가 중요한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데이는 7시까지 출근이지만, 신규이기때문에 한 시간에서 30분정도 일찍 가야했다. 출근 전 환자 파악을 하고 출근하는 것이 일할 때도, 다음 어싸인(Assign, 담당)에게 인계줄 때에도 편하므로 출근 전 내 담당환자를 예상해보고 파악을 해보기로 한다. 신규는 늘 A룸을 보니까, 우리 중환자실 A룸 환자 4명을 미친듯이 리뷰했다.


새벽 3시에 미리 기상해서 하는 일이었다.

사실 적어도 내게 평소 새벽 3시라는 시간은 기상시간보단 취침시간과 더 친숙한 시간이었다.


어느 겨울 날 데이 출근 길, 버스안은 조용했다.

5시 30분, 내 얼굴이 누렇게 뜬게 느껴질 정도로 피곤했다. 새벽이라고 아직도 깜깜하니 내 앞길 같았다.



'자고 싶어, 쉬고 싶어... 2시간 동안 인계준비를 하고 출근하는데도 내 환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막막할 것 같아.. 오늘은 또 어떻게 혼나게 될까, 난 또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갈까.'


출근 길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다.

한숨을 푹 쉬다 며칠을, 몇 달을 버스에 비친 내 눈물을 몰래 훔치며 출근했다.




독립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때는 가을, 나이트를 마친 주말 오전 이었다.

데이번 선생님은 유독 나를 맘에 안 들어하시는 것만 같았다. 그래, 피해망상일지도 모른다. 동기들과 서로 "누구 선생님은 날 싫어하는 거 같아...", "난 누구 선생님.." 이런 대화를 나누며 그나마, 그나마 서로를 위로하고 있던 그런 때였다.

데이번으로 들어오시던 그 선생님에게는 항상 내 행동 하나하나에 컨펌(Confirm, 확인)을 받아야할 것 같았고 모든 말이 날카로웠다.


인계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손 발이 떨리고 내가 준비한 인계장의 글씨들이 괴발개발로 보여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내 눈만 움직이는 기분. 차라리 대본을 써야했다.





"A룸 나이트번 인계드리겠습니다. 나환자님은 80세 남자 환자분, acute MI로 오신 분으로.."

"MI full term이 뭐지?"

"Myocardial infarction, 심근경색 입니다."

"계속해."

"집에서 chest pain 호소하여 ER 경유하여 오신 분으로.. PCI 하시고 저희쪽 입원 하셨습니다. 저희 쪽 오신 이후로는 특별한 chest pain이나 다른 symptom 없이.."

"CAG결과는?"

"Left.. .. left..."

"관상동맥 종류는 알아?"

"........"

"환자가 고작 시술 하나 받고 우리 부서 왔는데, 그 시술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모르면서 지금 나한테 환자 상태에 대해서 인계주겠다는거니?"

"죄..죄송합니다.. 다시 준비해ㅅ.."



항상, 언제나 이런 광경을 마땅치 않게 지켜보는 사람은 또 따로, 아니 추가적으로 있는 법이다.


우리 부서에는 한 때 사대천왕이라며 병원 내에 태움으로 유명했던 올드 선생님들이 집합해있던 곳이었다. 사대천왕 자리를 차지하던 선생님들은 15년 이상 경력을 지니시던 선생님들이셨는데, 사실 '네 명이나 태움으로 유명한 선생님들이 계시다고?'라며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에 대한 이유는

태우는 간호사들은 대부분 아이를 낳으면서 태움끼까지 낳는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었는데다가 출산휴가 후엔 다른 부서로 로테이션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은 사그라들었지만 아직까지도 무서웠던 선생님 한 분이 계셨는데 나의 인계 현장을 멀리서 보고 계셨다. 거리상 듣지는 못하셨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기꺼이, 기꺼이 손수 그 옆으로 찾아와 주셨다. 내가 어버버. 지리멸렬하게 인계하는 그 모습을 직접 귀에 담고 싶어서, 그렇게 기꺼이 찾아와 주셨다.



"다시 나한테 인계 줘보세요."

내가 환자에 대한 그 어떤 말들을 내 뱉을 이 순간, 들 숨과 날 숨이 선생님이 원하는 타이밍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태워질 거라는 걸 직감한다.


그리고 나이트를 끝낸 아침, 지금 막 날이 밝아온 그 아침, 그 사실을 인지한 채로 바들바들 떨며 내 엉망인 인계장의 글씨는 더더욱 형편없어 보일뿐이다. 무슨 말이라도 지어내고 싶다.


"크게 말해.", "다시.", "뭐라고?", "얘 뭐라는거니? 안들려. 넌 들리니?", "저기요. 크게 말 안하실거에요?", "목소리 크게 안 내?!"


올드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고, 내게 목소리를 크게 내라고 할 때마다 내 목소리는 더 작아져만 갔다.


"장애있니?" 아니, 내 자신이 작아져만 갔다.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A룸 널싱카트 앞에서 인계하던 나는 선생님들께 둘러싸인 채 마냥 울었다. 서러웠다. 이 현장을 벗어나기 전까지 난 언제까지고 상처받을 말들을 들어야 했다. 언제까지 날 붙잡아 두실까. 지금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부서 안에 탈의실이 있어서 절대 쉽사리 도망치지 못한다.


아니, 이건 사실 핑계일 뿐이다.. 난 그저 깡이 없을 뿐이다. 일도 못하는데, 당당하게 그만하라고 말도 못하고, 뛰쳐나가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의식이 명료한 환자가 힐끗힐끗 쳐다보는 기분까지 들었다.

"야. 왜 울어? 누가 보면 내가 너 태우는 줄 알겠어-! 따라오세요."

선생님은 나를 간호사 스테이션 가운데에 앉혔다.


그리고 이 곳에서의 내 자질, 능력, 가치는


"니가 간호사면허증을 가질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니가 나랑 똑같은 월급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울 자격이 있어서 우는거야, 지금?"


그저 민폐임을, 알 수 있었다. 난 형편 없는 존재야.





그 날, 정말 서럽게 울었다.

머리가 깨지도록, 병원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나이트 근무를 같이 한 선생님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저렇게까지 울까. 싶은걸까? 그렇게 몇 십분간 스테이션에서 말 그대로 탈탈 털렸다. 영혼 빠져나갈 정도로 우는 것,  코 점막과 눈물샘에서 빼낼 수 있는 나의 모든 체액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엉엉' 큰 소리가 났다. 처음엔 참고 싶어 '끄윽'소리가 나왔지만 결국 봇물 터지듯, 그저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눈에 눈물이 금새 차올라 후두둑 떨어지면 곧바로 발칵 차오르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휴지를 쥐어주면서도 가슴을 후벼파는 말들을 계속 했다. 우는 내내 내 몸의 수분과 염분을 다 빼가가서 어질하다.


아니, 상처에 마음에 금이가서 사고회로와 마음회로에 고장이 나서 어지럽다.









간신히 그 상황 속에서 빠져나왔다.

어떻게 빠져나왔느냐고? 너무 서럽게 울어서, 그게 몇 십분간 지속이 되서. 대화는 커녕 대답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애써, 보내주셨다.


때는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엉엉 울며 나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던거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나 진짜 못 하겠어. 못 버틸 거 같아.. 사직하고 싶어."라며 서럽게 울었다. 버스를 타러 사거리의 신호등을 기다리며 내가 건넨 말, 눈물이 앞을 가려서 신호등 빛이 번졌다.



그렇게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우는 동안 미친듯이 문자가 왔다.

함께 나이트 근무를 한 선생님이었다. 나와는 사번이 한 개 차이나는 선생님이셨다. 'ㅇ', 'ㅇㅇ', '어디에요' 등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문자와 함께, 빨리 내 문자를 확인하라는 느낌의 아무 의미없는 문자가 10통이상 와있었다.


화들짝 놀라 남자친구에게 같이 일했던 선생님들이 찾는다 이야기하고 선생님들의 연락에 대꾸했다. 나이트를 함께한 두 선생님이 서럽게 울던 내가 마음이 쓰였던 걸까, 병원 앞 카페에서 날 기다리고 계셨다.

나와 선생님들은 병원이라는 공간에 12시간 넘게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피곤하다하더라도 날 위해 기꺼이 시간을 더 할애해주셨다.


"야, 너무 서럽게 울어서 깜짝 놀랐어. 무슨 병원이 떠나가라 우냐...", "인계는, 어플 켜봐."


간호사로서 공부하는 팁, 인계를 준비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에 선생님들의 꿀팁은 내 귀에 안들리고 내 눈에 안들어온게 사실이다. 근데 그냥 선생님들이 날 앉혀놓고 토닥여주는 그 느낌이 정말 너무나도 감사해서, 내가 관두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이 이 병원에 아직은 있다고 착각을 심어주는 이 기분이 좋아서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선생님들 말에 감사의 눈물을 글썽인 채로 반응했다.



그렇게 14시간동안, 병원 반경 100m내에 있었다. 끝마치고 난 시간은 오전 11시가 다 되었었다.


선생님들께 코흘리개처럼 훌쩍거리며 멍청하게 '헤헤'거리며 웃었다. 그 손길이, 아직은 버텨보라는 말 같아서, 내 가치를 덜 하찮게 만들어주심에 정말 감사해서 평생 잊을 수가 없는 하루가 되었다. 90도로 감사하다,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인사했다.


나와서 내 휴대폰이 뜨거워졌을 정도로 부재중이 와있음을 깨닳았다. 근무한다고 무음으로 돌려놓고, 퇴근할때 정신없어서 차마 바꾸지 못했다가 선생님들과 함께 있느라고 확인을 못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너무 크게 울어 제낀탓에 남자친구가 한 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깜짝 놀랐어... 그렇게 크게 우는데, 전화도 안받고..."


화장은 다 지워지고, 얼굴은 팅팅 부었고, 머리는 기름졌었다. 못생긴 얼굴이었지만 걱정해주는 남자친구의 말과 눈빛으로 충분했다.







응급사직은 그 어떤 사건들, 상황들이 있었을 때 치유될 충분한 시간이 없었거나 주변에 위로해 줄 사람이 없어서 일어나기도 하겠구나, 생각했다.


신규간호사, 그래.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는 입사초가 되면 정말 귀신같이 머리가 백짓장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할 일은 태산이라는 걸 몸소 느껴볼 때, 우리는 상처받으며 근무를 버텨야했고 집에 가면 오늘 받은 상처와 자괴감에 잠시 우울한 시간을 치유해주어야 한다.


완벽할 수 없지만,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어려운 일이라는 건 들었지만, 적응하고 싶었다.


예쁨받고 싶었다.


환자를 잘 봐도 인계때문에 무너지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인계라는 지옥, 독립한지 일주일 차인 나에겐 피하고만 싶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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