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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09. 2022

간호사는 사람을 위한 직업일거라고 생각했는데,나는.

독립 3개월차, 입사 4개월차.

간호사는 사람을 위한 직업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누군가에게 내가 사람이긴 한 걸까.

"사람에 의해 너무 다치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4개월차, 어느 겨울 나이트 였다.



내 병원은 수도권에 있다 하더라도 집에서 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이 많았던 지라 밤 늦게 끝나는 이브닝의 퇴근시간은 다른 병원에 비해 조금 빠른 대신, 나이트 근무의 출근 시간이 빠른 편이었다.



나이트, 그래서 근무 시간이 다른 듀티에 비해 길었다.

오버타임을 하다보면 나이트 근무자들은 부서장님의 출근시간을 데이번과 함께 반겨드려야 했거나, 나이트의 퇴근시간이 부서장님이 출근시간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사성 없는 멤버'가 되지 않기 위해 나이트번 간호사들은 부서장님의 출근시간은 무조건 지나서 퇴근하는게 우리 부서의 법 같았다.


그리고 부서장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나이트번은 깔끔한 상태의 부서 환경을 유지하거나, 부서장님 출근 전에 만들어놔야 했다.




아침마다 담당 주치의가 출근해 잘못된 정규오더에 대해 문의하고 '오더 바꾸고 가야지, 오더 바뀐거 확인하고 가야지.'를 시행하다보면,

즉, 오더를 퇴근시간 직전에 다시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먹이고, 주변정리를 하다보면 아침 10시가 되기도 했다.


즉, 13시간동안, 무려 13시간동안 병원에 있던 적이 허다했다.





오늘 아침에는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는 보조원이 없었다.


보조원이 없을때에는 막내가 직접 모든 환자의 소변통을 비워야 했다. 7시가 땡치자 마자 주치의에게 연락해 잘못된 오더들을 정리해 이야기 하고 급하게 인계했다. "부서장님이 오기전에 너가 소변통도 비워야하고, 주변정리도 해야하는 거 알지?"라는 말을 세번이나 들었다. 안하면 죽음일 것. 부리나캐 소변통을 비우고 있었다.



주변정리,

"이리와봐. 이 환자는 왜 반시트가 없지? 그러다 대변 보시면 어차피 너네만 고생이야. 모르겠어?"


부서장님은 아침마다 모든 침상을 돌며 주변정리에 대해 지적하셨다.




<중환자실 주변 정리>
-협탁위엔 반드시 필요한 것만 올라가 있게 할 것
-환자 장을 열었을 때, 쏟아지지 않게 차곡 차곡 정리해놓을 것
-환경티슈로 먼지와 난간을 잘 닦을 것
-시트+반시트+깔개매트 순으로 깔 것
-깔개매트는 엉덩이, 머리 아래에 각각 두 장이상씩 깔 것
-베개는 거동불가 환자의 경우 3개이상 사용하여 체위변경할 것
-반시트의 병원 로고가 가운데에 있게 할 것
-시트는 구김없게.



이것들을 해야했다. 부서장님이 머지않아 출근하셨을 당시, 나는 소변통을 비우고 있었다.

부서장님은 부서장실로 들어가 잠시 채비를 하시고 스테이션에 앉아 전산을 훑어보셨다.

눈치를 살살 보며 마지막, 마지막 소변통을 마저 비우고 있었다.


"할 거 남았어?" B룸 선생님이시다. 6년차.

"어.. 소변통 다 비우면 주변 정리 해야합니다."

"그래? 음.. 그것보다 약국 좀 다녀와주라. 나 급하게 약 타올게 있어서. 주변정리는.. 그냥 하지 말고."

"..네." 그래도 했어야 했는데,진짜로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부탁은, 거절 못 할 것이다.






주변정리를 왜, 간호사가 하여야할까?


난 내 환자보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우리는 먼지쌓이는걸 확인하고 아침마다 먼지를 닦아대고 있어야할까, 현타가 올때가 많았다.


약국을 다녀오니 부서장님이 A룸을 라운딩하고 계신다. 아, 왠지 불려가서 대차게 혼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리와보라고 하신다. 표정이 진짜 오만상이시다.

안그래도 지금 이미 오버타임을 하고 있는데, 또 업무가 생기려한다.



"여기 먼지 쌓인게 넌 안보이니? 일하면서 환자들 지나갈때마다 닦아주면 얼마나 좋아? 난간에 핏자국이 신경안쓰여? 보호자가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왜? 왜, 내가 해야하지.' 오늘 보조업무만 몇 개를 했는데도, 아직도 내 업무가 남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간호사로서 커가는데 메인이 되는 업무는 아닌 것 같다.







이 병원엔 미화를 담당하시는 분이 없는걸까? 간호사로서 너무 많은 걸 해야하는거 아닌가.

"환경티슈로 자, 봐봐. 이렇게 거품이 잔뜩 나도록 닦아야된다고." 이건 간호랑 관련이 있는게 아니라, 병원 종사자 중에 '미화 담당'에게 교육해야하는 내용이 아닌가?


이해를 해보려고 했는데도 안되서,

10시간 이상 병원에 머물러 있느라고,

내 딸리는 이해심이 피곤함에 사무쳐 표정이 굳어간다.



오만가지 생각을 혼자, 나 혼자 하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야, 너 지금 이거 너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


난 단지 라텍스 글러브를 끼고 환경티슈로 난간을 벅벅 닦으며 잔소리를 다 받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아우라는 숨기지 못했었나보다.


"아, 아닙니다."



B룸을 보니 B룸 선생님께서는 퇴근을 빨리 하고 싶었는지 닦아내고 있었다.


한 번만, 한 번만 A룸에 오셔서 '제가 약국에 다녀오라고 시켰어요. 얘는 하려고 했어요.' 두 마디만 해주셨으면 좋겠다.


울화통에 치밀었지만 집에 너무나도 가고 싶어서, 침대와 사이드 테이블을 닦아내고 있었다. 부서장님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훈수를 놓으시다가 얘가 어느정도 하는군, 싶었는지 차지선생님이 계시는 스테이션으로 향하신다.


차지선생님도 스테이션을 닦고 계셨다. 부서장님이 뭐라뭐라 하시자, 잠시 표정이 굳는다.


그냥 오늘 우리 나이트 번이 운이 안 좋구나.

부서장님이 기분이 안 좋으신가보다. 생각했다.






나이트를 간신히 끝내고 퇴근에 앞서, 환복을 하기 위해 탈의실로 들어왔다. 차지선생님께서 "오늘 왜 이렇게 늦게 끝난거지?" 라고 하셨다. 나는 우리 모두의 처지가 안좋아서, 개같아서 하시는 말씀인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머쓱하고, 씁쓸하게 웃었다.


"어? 말 좀 해봐. 왜 늦게 끝났는지."

뭘까.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기분이다.


씁쓸하게 '제가 업무가 느려서..'라고 답했으나 썩 맘에 들지 않는 답변인 것 같다.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가, 로비를 나가는 길 내내 나에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독촉하고 있는 것 같다.


"왜 대답을 제대로 못해? 넌 이유를 알 거 아냐?"


이유. 잘 알고 있었다. 업무 과중때문에, 안그래도 이 병원에서 보는 환자수는 다른 병원에 비해 많은데에 반해 간호사가 간호의 업무외에 할일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나도 억울했다. 선생님이 진심인가 싶었다.


나이트는 늘, 8시 반이 넘어 끝났다. 지겹도록 오버타임을 해왔다. 그게 당연해지면 안되었지만 오늘 이 정도에 끝난 건 사실 평소와 다를게 없었는데, 왜 오늘? 오늘만 그런거 아닌데. 지금, 늦게 끝났다고 하시는 걸까.


그리고 진짜 모르겠다.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이고

나만 알고 있는 이유여야하는진 모르겠다.


"너 왜 주변정리 하랬는데 안해? 환자 혈압커프기는 왜 매시간마다 안풀어주고 내가 독촉해야 매시간 풀어주는데? 니 멘토가 그렇게 가르쳤니? 니 멘토도 똑같이 불러다가 혼내면서 물어본다?"


서러웠다. 그 순간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B룸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이 너무 조용히만 계셔서, B룸 선생님의 부탁이라는 핑계아닌 그 핑계를 당당하게 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그냥 난 대역죄인이 되어야 한다.


차지선생님은 1층에서 병원밖을 나가는 길 내내 나를 쪼아댔다. "너 때문에 근무가 늦게 끝났어. 너가 일을 못해서. 아무도 너한테 그딴식으로 가르쳐준 사람은 없어." 라는 말들에 상처를 받고 눈물이 질질 나왔다.


정문을 빠져나와 함께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모두가 말이 사라졌다.


"아닙니다. 제 멘토 선생님께서는 잘 가르쳐주셨는데 제가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론 제대로 하겠습니다."를 연발하던 나도 이제 기운을 다했고, 말이 사라진 선생님도 화가 이제 가라앉으셨구나- 했다.


길이 나뉘는 구간이었다. 선생님은 가야할 길을 가시기에 나도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줄 알고 인사를 드렸다. 끝까지 선생님의 내 집과 멀어져가면서까지, 내 집가는 길을 포기하면서까지, 선생님을 쫓아가며 화가 풀린지 정확하게 확인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 그래, 뒤늦게 생각해보니 화가 풀리지 않으셨다면 내가 그냥 그렇게 가버리는건 꽤나 짜증났을 것이다.


"야, 내 말 안 끝났는데 어딜가!!"

횡단보도를 건너서 가는 차지선생님이 따라오지 않는 내게 소리를 지르셨다. 놀라 황급히 따라갔다. 오직 초록빛의 신호등만이 온전히 건너가라고, 날 기다려주었다.


"야, 내가 말하고 있는데 지금 집에 가려고 한거야? 어?"

"...죄송합니다.."

"야 됐고, 오늘 니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일할건지 다음 출근해서 나한테 똑바로 얘기해. 알겠어?"

"...네. 죄송합니다."


하이피치의 목소리로 화내시던 선생님은 인사도 받아주지 않으신 채로, 그렇게 떠나갔다. B룸의 선생님은 쭈뼛대다 차지선생님과 함께 자리를 떴다.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을 했을까. 그 병원 앞 길거리,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다. 내 자신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느껴졌다. 억울함과 서러움에 복받쳐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내 신체만이 그곳에 있었다.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솔직히, 뭐.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닐지 모르겠다만 그냥 근 몇 개월 간 일하면서 내 자신은 이미 너무나도 하찮았다. 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어렸을 적부터 꿈 꿔오다 내딛은 작은 발 걸음에 불과했는데 버티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도록 가스라이팅 당하고, 내 자신이 이 세상에 그다지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하루가 멀다하게 깨닳아 오고 있었기에, 그 순간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러움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차올라 눈 앞을 가려올 때쯤, 병원 앞 건물 외부의 난간 턱에 앉았다. 그리고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 몇 십분이 지나도 눈물이 그치지 않아, 이대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내딛어보려고, 엄마의 품이 그리워서 집이라도 가자고 발을 움직여보려하면 또 다시 힘이 풀려 주저앉고만 싶었다. 결국 옆에 있는 턱으로 옮겨 앉아 울고 있는 꼴이다.



...



그렇게 엉엉, 울다 정신차리자- 하지만 너무 서러워. 엉엉,


그 짓을 반복하다 보니 건물 1층 안쪽에서 경비아저씨가 나오셨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되요-'라는 말이 아닌 아저씨는 조용히, "젊은 아가씨가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서럽게 울까. 여기 간호사에요..?" 라고 말을 건네셨다.


훌쩍 거리며 고개를 작게 두어번 끄덕이고, 죄송하다 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죄송하다 뿐이다.


"아이고, 참... 내 딸도 간호사인데 고생이 많지.. 나도 내 딸이 하도 울길래 그만 두라고도 했어.아가씨, 따뜻한거라도 하나 사주고 싶네.. 커피집 문 열면 하나 만들어달라고 할테니까 먹고 마음 추스리고 가요. 그래도 좋은 사람들은 있어. 어디든."

경비아저씨는 휴지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감사함과, 감사함에 눈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몇 분 후 카페가 열렸다.

경비아저씨는 카페가 열리자마자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받아 내게 건네주셨다. 그리고 식을 때까지 제대로 마시지 못했지만, 차게 식어왔던 내 마음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오늘도 그렇게 버틸 수 있었다.






하루종일의 부정을, 단 한순간의 긍정으로 뒤엎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신규간호사는 늘, 가스라이팅 당하며 선배들의 눈빛과 한숨소리에, 이름 부름에, '야'소리에 하루 몇 십번씩 심장이 멎어버리는 듯 하다.


내 자신에 대해 의심이 들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집에 가서 곰곰히, 내가 오늘 잘 한 것에 대해 100번 생각하고 못 한 것에 대해 5번씩 생각한다면 적어도 내 자신이 지켜질 것도 같다.



나약해져만 가던 신규이지만


100명 중 한 명은, 내게 힘을 줄 사람이 있을 거고,


100개의 사건 중 하나쯤은, 내가 잘한 게 있을 거니까,


그걸 위로 삼자.


나는 이걸 버틴다면 뭘 하든, 어딜 가든 잘 할 거니까.






버티자, 버텨보자.






*해당 글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각색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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