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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13. 2022

맛있는 척, 눈칫밥 먹기 (feat. 태움)

독립 1개월차, 입사 2개월차.


간호사로서, 의료진으로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으로서,
어느정도 긴장을 가지고 일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간호사 태움,


간호사 태움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 태움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대다수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까, 긴장을 늦추면 안되니까-" 라고 대답한다.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는 말, 맞다. 하지만 '태움'이라는 단어는 결국 간호계에서만 쓰는 말이다. 그래서, 간호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태움'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면, "간호사들이 생명을 다루기때문에 긴장을 늦추지말라고 과하게 혼내거나 하지 않아도 될 상처되는 말들과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설명해왔다.



그럼 대다수는 묻는다.

"근데 왜, '태움'이라고 말해?"

.

.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탈탈 터니까."


대부분 이 대답을 들으면 상대방은 '와-.'와 같은 짧은 탄식과 함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 어떤 일반회사에서도, 직장상사의 예민함을 받아주고 이랬다 저랬다하는 기분을 맞춰주고 서류를 던지는 행위에 화를 참아내고

여자라고 욕먹고

어리다고, 혹은 나이가 많다고 욕먹고

부모님 드립을 참아내는 것은

사실 어디든 가면 있었다.


하지만 간호계에서만 유독, "태움"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건 타 직업에서 아랫사람을 다루는 정도가 훨씬 과했기 때문에, 간호사로서 우리도 태움이 아닌 '혼냄'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 떨리는 긴장감 속 살아남기




"너 이거 했어?"라는 질문은 내가 전산에 자리잡으려고 할때마다 들어오는 질문.


"아.. 아직 못했습니다." 그렇다. 아무래도 몇 시간 전이고 하루 전이고에 알려줘서 머리와 마음에 아직 담아지지 않아 기억하기 어려웠거나 혹은 정말 못배웠다. 하지만 '해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배운 적이 없어서 몰랐습니다.'라고 하는 게 불을 더 붙이는 꼴이 될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물론, 입사한 지 한 달이라는 기간은 짧은 기간이지만, 몇 선생님들께 기본 중에 기본임에도 아직까지도 전산을 알 지 못한다면 또 그 때문에 한 소리 들을게 뻔하다. "들어온지 한 달이나 되었는데, 환자에 대해서 그런 기본적인 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면 간호사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그러고도 너가 담당은 맞아?, 간호사는 맞아?, 라는 말을 들을 바에는.


그냥 내 손이 느리거나 머리가 안돌아가는 것처럼 말하는 게 낫다.



그럴 땐 조용히, 동기가 있으면 베스트(best)다. 동기던 가장 가까운 선배에게 조용히 다가가, 조용히 배우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일하는 부서는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내 행동반경은 금새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러니 너무 튀지 않게, 혹은 해야할 일 A대신 B를 하는척, A를 묻기.



그래. 안 혼나고 싶어서, 그만 혼나고 싶어서 잔머리를 굴리는데에 안간 힘을 다 쓰고 있다.




"이거 왜 하는지는 알고 하는 거니?" 역시나, 자주 듣는 질문이다.


.. 아냐고?모른다. 그냥.. 할 일에 너무 벅차서 허덕거리며 배우고 또 배우고, 간신히 일했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일하니? 너가 오더리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가 학생때부터 배운 걸 토대로 생각해봐. 왜 했을지."


선생님은 날카로운 눈 빛으로 나를 한번 째리듯 쳐다보고 스테이션으로 향하셨다.





집에 가기 전까지 그래서 생각은 해봤냐며, 질문에 답해보라고 하지 않았으면-. 으로 바라고 바라면서 일한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해당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답이 안나오면 찾아볼 수 있다.


그래.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답을 찾자. '집가는 길마저 우울하게 만들지 말자-.' 하겠지만,

그냥 간호사 업무라는게,

애초부터 나노단위로 쪼개고 쪼개지않으면 일을 제 때 마무리할 수가 없다.


'아- 그래, 맘 편히 일하고 오버타임 하지뭐.' 라고 함부로 마음 먹을 수 없다. 다음 교대 근무자가 나타나기전에 내 업무를 마쳐놔야하기 때문이다.







눈칫밥. 슬기롭게, 눈칫밥을 맛있는 척 먹어야했다.



눈치를 과하게 봐야했다. 특정 과가 정해져있는 중환자실이었기에 부서가 작은 사이즈였다. '룸(Room)'으로 구분해 A룸, B룸, E룸 이런식이었지만 그렇다고 룸이라해서 실제 방구조로 되어있거나 가벽, 파티션 조차 없고 그냥 뻥- 뚫려 있었다.


하여, 간호사 스테이션에선 A룸과 B룸이 한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A룸에서도 고개만 돌리면 B룸이 바로 보였다.



즉, 서로의 행동들이 서로에게 한 눈에 보이는 구조.


게다가 간호사들은 귀가 밝다. 알람에 즉각 반응해야하기 때문에, 끙끙 앓는 환자의 호소를 캐치하기 위해 등. 일을 하면 할 수록 나이가 들어감에도 귀는 더 밝아지는 것 같다.


하여, 신규들에게는 숨막히는 공간일 뿐이다.

눈치를 봐야했다.

뒷통수에서 레이저가 느껴지고, 마치 내 몸에 도청장치가 달려있는 기분이었으니까.

.

.

발령난지 사흘 째, 실습하러 온 학생간호사처럼 선생님들만 졸졸 따라다니며 눈치를 보던 기간이었다.

OT기간. 이 기간동안에는 9시부터 5시까지 근무를 했다.


그 날의 하루를 어찌저찌 보내고 있었다. 데이 중 포지션체인지(*position change, back care: 중환자실에선 환자들이 스스로 자세를 바꾸기 힘들어 직원들이 수동적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긴다. 2시간마다 시행한다.)할 때 눈치껏 커텐 속으로 들어가 손을 보탰다.



"안녕하세요." 한 남자선생님이 사람 좋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안녕하세요." 경직된 상태로 대답했다.

"저도 선생님이랑 동기에요. 반갑습니다."

무장이 해제되는 기분. 한 줄기 빛처럼 너무나도 반가웠다. 시끄럽게 할 수는 없어서, "아-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려요!"라며 인사했다.


선생님은 다음 환자에게 넘어가야할 때, 다시 무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가 자칫하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했기 때문인듯 했다.

.

.

2시가 조금 넘어 이브닝번 선생님들이 출근했다.


'어- 저 선생님..!' 나랑 동기다. 신규간호사 교육때 봤던 선생님이었다. 내 뒤에 앉아있었는데, 나는 혼자 조용히 있는 걸 못버티는 성격이어서 뒷 자리에 위치했던 그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던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은 물품 카운트를 하고 있었다.


막내가 카운트하는 것들은 대부분 동선이 길었고 오래걸렸다. 오물처리실, A룸, B룸, 물품보관실, 수간호사 방, 간호사 스테이션까지 돌아다녀야 모든 것을 카운트할 수 있었다.


동기가 오물처리실에 가서 소독을 내려야하는 앰부백(*Ambu bag)을 카운트하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의 심전도 소리만이 들려오던 부서에서 눈치를 살살 살피다 오물처리실에 따라 들어갔다.




"선생님! 여기 발령나셨었어요?" 나는 반가움에 소리를 크게 내고 싶었지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어-?! 전 3개월 조금 넘었어요!"

"저 기억나요? 교육 때.."

"네! 제 앞자리..!"

"맞아요! 그때 응급실이랑 내과병동 가고 싶어하시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전혀 상관없었나봐요."


동기는 당시 교육 날, 희망 부서(원티드) 1순위에 내과병동, 2순위에 응급실을 썼었다. 당시 몰래 훔쳐봤다가 원티드가지고 말을 걸었었다.


동기는 당시 응급실이 가고 싶지만, 너무 악명이 높아서 2순위에 썼다고 했다.


그리고 중환자실로 발령났다.


"잘 부탁해요!"


우리의 첫 만남. 오물처리실에서, 작은 목소리로

짧게 인사했다.




3시가 조금 넘어 남자 동기는 데이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앞두고 있었다. 들어보니, 10월에 있을 병원 축제에서 춤을 춰야해서 연습을 위해 이번 달 거의 대부분 데이를 받았다고 한다. 아찔했다. 내가 먼저 발령났으면, 내가 춤을 출 뻔했을까?






며칠, 몇 주정도가 지났었다.


간신히 독립을 한 상태였다. 우리가 일하는 부서가 워낙에 총 환자수가 적은 부서여서 동기들과 같은 듀티를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으로 힘들었다.


우리는 '쫄'이라고 불리는 막내였다. 어떤 차지 선생님들은 "야, 쫄랭아." 라고 부르기도 했다. 쫄, 막내. 맞는 소리지만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부름에 즉각 반응해야했다. 즉, "쫄랭아."라는 소리에 "네!" 하며 달려가야했다.


우리에게 그나마 친해질 수 있는 기회는, 있기나 한 걸까.

결국 업무상 말 거는 것이지만 쥐어짜듯 아무도 모르게 둘을 마주쳐 서로 힘내자는 눈빛으로 교감하기. 그 뿐이다.


아, 하나 더 쥐어 짜 보자면.

보통 인계가 끝나면 간호사 스스테이션으로 가 그곳을 마치 대기공간처럼, 퇴근을 기다린다. 혹은 업무가 아직 남은 선생님들의 업무에 손을 보태기도 한다.

하지만 눈치껏 다른 선생님들의 인계가 계속 되고 있다면 이때다 싶어 우리는 인계가 끝나고도 작은 소리로 인계하는 척, 사담 나누기 정도 였다.


초반에 나보다 4개월 먼저 입사한 동기와는 그런식으로, 아니 그런식으로 밖에 가까워져야했다.

.

.

내가 독립한지 얼마안 된 시기였다. 동기는 이브닝, 나는 나이트였다. 동기는 내게 인계를 끝내고도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향하지 않고 쭈뼛대며 환자들이 모여있는 곳의 전산 앞에 있었다.


"퇴근 준비 안하세요? 저기 앉아서 기다리시지." 순진하게도, 나는 내 동기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실 내 속마음은, 너와 가까워질 시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래서 나 괜히 사람좋은척 너에게 퇴근 안하냐고-. 업무도 마무리 되었는데, 대기하지 않느냐고 말을 걸어보는 것 뿐이다.

단순히, 이기적이게도 그 뿐이었다-.


"아-. ... 지금 스테이션에서 저희 얘기해서요.."


응? 내가 눈치가 없던 걸까, 동기는 애써 모르는 척 하며 머쓱하게 바닥만을 바라봤다. 나는 슬그머니 스테이션을 쳐다봤다.


정말 작은 듯, 집중하면 들릴 것만 같은 가깝고도 먼 소리였다. 슬쩍 슬쩍 A룸을 흘겨보는 눈빛을 느꼈다. 뜨끔, 아니 흠칫했다. 그래서 삐걱거리며 기계처럼 애써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렇게 내 동기는 인계가 끝났음에도 괜스레 머쓱한 그 시간들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앉아 있거나 가만히 있으면 "너 다했어?"라는 질문이 돌아올 것인데, 우리 '쫄'들이 보는 A룸 환자들의 한 듀티 업무는 다했음에도 같은 듀티의 다른 올드 선생님들이 다 하지 못했다면 한 낯 '쫄'인 우리의 업무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니 업무만 다하면 끝이세요?"라는 말을 들을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알고보니, loss된 업무가 하나라도 있다면, "너 이것도 안해놓고 다했다고 얘기하는 거니?" 라는 말을 들을게 뻔하다.

하여, 아직 업무가 남아있는 척-, 아니 사실 업무를 100프로 소화했다도 자부할 수 없지만, 내 딴엔 아는 만큼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사뭇치는 찝찝함에 일단 전산에 앉아서 괜히 끄적인다. 내가 잘 한건지. 다시 한 번 살핀다.

능숙한 B룸 선생님의 일을 돕는게 우선이 아니라,

내 업무를 다 해냈느냐가 우선이니까.




어째뜬 지금 상황은,

다른 올드 선생님들 모두가 인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 방은 다 끝났다. 좌불안석인 그런 상황이다. '난 내 할일도, 인계도 끝났는데- B룸 선생님은 인계가 끝나고도 해야할 액팅이 남아있었다면-?' 난 눈치없이 앉아서 쉬고있던 꼴이 된다. "전산 걸러보지 그랬냐.", "한 번이라도 물어보기라도 했냐." 소릴 들을 수 있다.


내 동기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 이미 내가 들어오기 전인 4개월 전부터 내 동기는 차곡차곡, 자신이 갉아져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워가고 있었다.



동기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B룸을 흘긋흘긋 쳐다봤다. 이미 B룸의 전산은 5개월차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훑어본 듯 하다. 자신의 능력으로 보기엔 더이상 액팅은 없어보이고 인계만을 기다리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확인차 도와야할 액팅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자신을 욕하고 있는 스테이션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동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냥 자포자기한 듯 스테이션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전산에 자리잡아 차팅을 한 번 쓱-. 괜스레 I/O(* Input/Output, 환자에게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 예를 들어 대표적으로 input으로는 수액, 식이. output으로는 대소변.)를 자신이 잘 끊었는지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있었다.


.

.

.



그리고 며칠 후 내 동기가

일을 너무나도 잘하는 간호사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플러스 알파를 알고,

공부해오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그와 관련된 자료까지 준비해왔으며,

묻지 않아도 숙제를 들고와 당당하게 내밀어 질문에 응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선생님들은 동기와 친해져보고 싶은 듯 했다.

하지만 동기는 선을 세게 그었다.

그래서, 그래서 애써 미워하려고 욕하는 것 같았다.



간호사로서 미워할 수 없는 내 동기가

욕먹는 이유는 다만.

'다가가기 힘들어서' 였다는 것이다.






*해당 글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각색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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