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3편> 진실된 나의 마음을 거짓말로 정당화하기
네가 점점 내게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항상 편하고 안정적이지만, 너는 요즘 불안해 보인다.
너는 나와의 관계에서도 화를 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왜 술만 마시면 연락이 안 되는 거야? “
“그야. 우리가 연애하는 거 네가 알려지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그래서 휴대폰을 꺼낼 수가 없어. “
우리는 주변에 함께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근데 너의 경험상 같은 학교든, 같은 동아리든, 같은 직장이 든 간에 그 어떤 사회에 함께 속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걸 공개하면 좋을 게 하나 없다는 이유였다. 대충 그 이유들 중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건 성적인 농담의 대상이 되기 좋다는 것 같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그 우리의 사회에서 비밀을 지키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아무리 그래도 5시간은 심했잖아. 중간에 화장실을 안 가?”
“응. 진짜로 안가.”
“장소 이동 할 거 아냐.”
“진짜 한 자리에서만 마셨어. “
이게 나의 거짓말이든, 사실이든 나는 핑계를 대야 한다. 떳떳한 나의 마음을 행동화하지 못해서, 거짓말로 나의 행동들을 지어내 나의 마음을 보여준다.
“내가 걱정할 걸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성친구들이랑 술을 밤새도록 마시면 적어도 네가 화장실 가는 빈도수를 늘리던지.”
너는 맞는 말만 한다.
“아니, 근데 애초에 여자친구가 있다 정도는 밝힐 수 있는 거 아냐?”
“.. 어떻게 그래.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냥 여자친구 생겼고, 진지해지면 말해주겠다, 지금 연애 초반이라 연락 자주 해줘야 한다 하면 되잖아.”
너는 할 말 없게 한다.
“.. 그냥 우리 밝히면 안 돼?”
“왜 꼭 그래야 하는 건데? 왜 누구랑 사귀는지까지 말해야 하는 거냐고. 그냥 여자친구가 지랄 맞다고 라도 해. 제발-. “
너의 목소리가 격양되고 거친 단어를 쓴다. ‘제발’이라는 단어에는 혐오감까지 느껴진다. 이런 말 저런 말조차 주변에 못해서 나를 못 미더워하는 것만 같다.
나는 거짓말을 못 친다. 아니, 거짓말을 칠 거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서 구체적으로 쳐야 한다. 그래서 생각하기가 복잡하고 귀찮다.
“.. 혹시 너 여기 사람들한테 여자친구 있을 때마다 나불거렸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정확히 파악했다.
그래, 과거에 내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누군지, 몇 살이고 뭐 하는 사람인지, 어제는 어디서 데이트를 했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두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내가 여자친구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다 말해야 한다. 늘 그래왔던 내가 갑자기 안 그러는 것이 너무 이상할 것이다.
“.. 그래. 그래라. “ 너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참, 기분이 별로네. 네가 전 여자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 들 때문에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는 결국 내 전 여자친구들 때문에 내가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짓말부터 불가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과거의 가벼운 솔직함이 너에게는 거짓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화를 내다가도 나의 반응 하나하나에 상응하는 반응은, 오히려 정이 떨어진 듯 환멸의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뭔 소리야.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
너는 오늘도 술 마시고 연락 안 되는 나에게 화가 나있다. 내 나름 노력했는데, 새벽 한 시까지 한 시간마다 화장실 가는 척 연락했는데..
그 이후에 너무 취해버려서 또 연락이 두절되어 버렸다고 화가 났다. 사건사고 없이 집에 잘 들어갔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이전보다 고치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은 칭찬해 줄 수 없는 걸까-..
괜스레 억울하다. 네가 아는 사람들이랑 마신 건데, 왜 질투를 하고 의심을 하지?
“걔는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걔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랑 걔가 어떤 사이인지 뻔히 알잖아. 근데 왜 네가 걔한테 질투를 느끼느냐고.”
“뭐? 질투?”
“질투가 아니면 뭔데.”
“이건 질투가 아냐. 배려의 문제지. 근데 네가 연인에게 있어서 지켜야 할 배려를 안 지키잖아. “
“.. 네가 그 친구를 싫어했어도 나, 널 이해해. 나도 짜증 나. 우리 관계를 그 친구가 망친 것 같아. “
“.. 계속 말하잖아. 내가 걜 왜 싫어해야 하는 건데? 그 친구가 아니라 네가 잘못한 건데 내가 걜 왜 싫어해야 하는 건데. “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눈엔, 너는 단지 질투한다는 자기 자신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아, 알겠어. 진짜 조심할게. 네가 싫다 하면 걔랑 술 안 마실게. “
“네가 남자랑 마시던 여자랑 마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랑 마시던 중요한 게 아니야. 몇 번이고 네가 술에 떡이 되면 연락이 두절되어 버려서, 난 네가 살아있나를 알려면 내가 널 찾아와야 해. 제발..”
네가 눈물을 투두둑 떨어트리며 말한다.
“.. 제발 무의식 중에도 나를 사랑해 줘..“
나는 그저 너에게 나의 마음이 올곧고, 허튼짓을 하지 않고 있으며, 네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연인이라고 해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괜스레 주변의 무언가나 누군가 때문에 우리가 다퉈야 하는 것이 싫어서 그것들을 너의 삶에서 그 정도로 가치 있게 생각하지 말라고, 나는 널 사랑하고 있다고 했는데.
항상 넌 “넌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 “라고,
“제발 내 마음 좀 깨달아줘. 느껴줘.” 가슴을 쾅쾅 치며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나에게 정이 떨어진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내가 더 좋아진 건가. 라기엔 최근에 화를 너무 많이 내고 있다.
더 사랑하기에 더 많은 화가 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사랑하기에 내가 너에게 맞춰지길 바라나 보다.
네가 내 관계에서 불안해하는가. 난 정말 널 두고 허튼짓 하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어.
“알겠어. 지난 일이니까 이제 그만 얘기하자.”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너를 억지로 껴안았다. 네가 나를 살짝 밀어내려는 것 같아, 더 세게 안았다.
제발, 지금 이런 상황들이 너무 불편하다. 안 좋은 얘기는 그만하고 싶어.
“.. 네가 고쳐지지 않으면 내겐 지난 일이 될 수 없어..”
너는 내 품에서 고개를 처박고 웅얼거렸다. 내 가슴팍의 잠옷이 너의 눈물로 축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