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Aug 12. 2024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아 가는 과정

<여자 4편> 사랑할 거야, 사랑하게 되었어, 사랑해.



근무를 하고 있어 비어있는 너의 집에 혼자 있으면, 조용히 너의 퇴근 시간만을 기다렸다.


너는 보통 일이 끝나면 곧바로 내게 전화를 했다. 직장 바로 앞에 살아서, 곧장 집으로 오면 5분 남짓도 걸리지 않지만 그마저도 내게 전화로 ’ 지금 가고 있어-.‘라며 알려주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는 너를, 너의 전화를 기다리며 바쁜가, 괜스레 걱정한다.


벨소리에 곧장 전화를 받고, ”조금 늦을 것 같다-. “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금세 시무룩 해진다. 그냥, 연장된 업무를 하는 네가 안타깝기도 하고, 보고 싶다. 안고 싶다. 아니, 안기고 싶다.


전화를 끊을 때쯤이면, 복도에서 선명하게 누군가 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누가 복도에서 이렇게 뛰어..”

내 연인은 오지 않는 데, 괜스레 서럽다.

‘우다다’ 소리가 가까워지고 선명해질 때쯤, 도어록을 여는 소리. 너와 나만 열 수 있는 , 내 눈앞의 도어록.


침대 위에 힘없이 철퍼덕 누워있던 나는 도어록 소리가 들리자마자 침대 밑으로 곧장 내려왔다.


문이 열리면 활짝 웃으며 들어오는 네가 보인다.

“서프라이즈”

뭐야-! 하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렇게 달려올 만큼.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달려온 너를 보니 내 세상이 벅차게 따듯해지다 못해 온 세상을 가진 것만 같다.


“나 빨리 안아줘.” 너는 내게 두 팔을 벌리며 다가온다.

나는 너의 머리를 감싸어 안았다. 너는 내가 너의 머리를 감싸 안을 수 있게끔 무릎을 굽혀 키를 낮췄다.


네가 부들부들 떨 만큼 힘을 주어 나를 꽉 끌어안았다.


이 행복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오늘 부모님이랑 식사하고 오려고. “

“뭐야, 우리 집으로 안 와? “

“그럴 것 같은데. 너네 집에 옷도 없고 그래서. “

“너네 집 아니고 우리 집. “

“아무튼.”



우린 서로의 하루가 끝나갈 때에 통화를 했다.

‘보고 싶어, 왜 지금 내 옆에 없어..’ 라며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에 나도 그, 보고 싶다는 감정이 미친 듯이 솟구친다.


“지금 갈 가?” 지금은 밤 열한 시.

“진짜? “

“싫음 말고. “

“아냐. 좋아서. 내가 음식 시켜놓을게.”

“안 씻어서 꾀죄죄한데, 괜찮아? “

“다 예뻐. 빨리 와. 보고 싶어. “


나는 너의 그 보고 싶다는 한 마디에, 급하게 옷 몇 벌을 챙겨 들고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뛰쳐나갔다. “어디가, 이 밤에 운전하면 위험해.”라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진짜, 어떡하지.

이제 네가 나를 보러 오지 않아도, 내가 가는 게 좋을 정도로 널 좋아하게 되었나 봐.






어느 날은 내가 회식이 있었다.

직장 사람들 중 마음이 잘 통하던 여자 넷의 모임. 꽤나 오랜만에 만났다. 이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면 진짜 아침까지 마실정도로 무식하게 먹었던 지라, 애당초부터 모텔이나 파티룸을 잡고 마시는 그런 사이였다.


그날도 역시 근처 파티룸을 잡고 술을 마셨다. 나는 그날 아침 일찍이부터 근무를 해서 그런가, 너무나도 피곤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1차에서부터 금세 취해버렸고, 파티룸에 들어온 기억은 나는 데 침대 위로 올라와 잠든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벌써 새벽 2시가 다 되어 간다.

옆에선 다른 친구가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 헉, 벌써 2시야? 큰일 났다-!”

“뭐야, 갑자기 깨서. 왜, 무슨 일인데? “

“남자친구한테 연락을 못해줬어. 큰일이다.”

“그래? 너 어제 핸드폰 붙잡고 뭐 하긴 하던데.”

“아, 그래도 남자친구한테 연락한 기억은 없어..”


사실 나는 술을 마시고 적어도 생사여부는 알 수 있을 정도의 연락은 꽤나 중요하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근데 내가 중시하는 걸, 내가 어겼다 생각하니 심장이 철렁 인다.


“지금 해주면 되지. “

친구의 답변을 듣고 메신저 어플을 켜 토독토독였다.



.

.


하지만 눈을 떠보니 벌써 9시다.

‘미쳤구나, 미쳤어-!’ 생각하며 당장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어제 메시지를 치다 전송버튼을 안 눌렀다.


당장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일어났어?”

“내가 진짜 미안해. 어제 술 먹고 바로 파티룸 왔는데 금방 뻗어버렸어.. 연락 안 돼서 걱정했지. 미안. “


“.. 무슨 소리야. 너 어제 나한테 전화로 다 얘기해 줬어. 잘 거라고도 얘기했어.”

”.. 뭐? “ 나는 급하게 통화목록을 확인했다. 실제로 내가 1차에서부터 파티룸까지 남자친구와 몇 차례의 전화를 했었다. 메신저에는 1차에서의 사진뿐이라서 당연히 이동하면서 연락을 안 한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1차 후에 바로 파티룸을 갔다.

1차에서 화장실 갈 때마다 전화, 파티룸으로 가는 길 택시 안에서 전화, 도착해서 전화, 자기 전에 전화.


“.. 와, 그랬구나.”

'뭐야. 거짓말 치다 걸린 상황은 아니지?'

“절대. 근데 나, 너 사랑하는구나.”

'이제야?'

“우리 사귀기 전이나 초반에는 내가 엄청 취해도 너에게 전화하거나 하진 않았잖아. “

'응, 그랬지.'

"근데 이제는 무의식 중에 너한테 연락하잖아."

'.. 그러네-.'

“일단 체크아웃하고 너 보러 갈게. 얼굴 보자. 샌드위치 사갈게.”


이제 내가 무의식 중에도 너를 찾아. 너를 안심시키고 싶어 하고. 너를 그리워해.

깨달았다.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사랑하게 되어가는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