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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27. 2024

순진한 척, 나를 위한 척

<여자 8편> 정서적 바람피우기



어느 날 아침, 너는 밤이 새도록 회사 동기와 술을 마시고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왔다.

사리분별이 어려운 채로 잔뜩 신이 난 너는 손에 음료수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나는 연락 두절된 네게 잔뜩 화가 나 있었는데, 오른손에 파란색의 에이드를 들고 강아지처럼 총총 뛰어오는 네가 정말 미웠다.


“일어났어? 나 이제 왔어.”

너는 베실베실 웃으며 이야기한다. 나는 한 점 부끄럼 없어 보이는 너의 눈동자를 하나씩,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왜 또 연락이 안 된 거야?”

“그래도 이렇게 들어왔잖아.”

너의 혀가 탱탱 부었나 보다. 발음은 자꾸만 꼬였다.


나는 피곤하지만 화가 나는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이런 모습을 수차례 보는 것은 익숙해지지도,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도 힘들었다.



따발총처럼 네게 맞는 소리만 내뱉는다.

너는 어린아이처럼 ‘우앙’하고 울었다. 왜, 네가 우는지 도통 모르겠다.

“내가 너 주려고 음료도 사 왔는데..”

울고 싶은 건 난데. 뜨겁다 못해 불타고 있는 내 속은 그렇게 잿덩이가 되어 차게 식어야 하는 걸까.


나는 한 숨을 푹 쉬었다.


우는 너는 철없는 다섯 살 남자아이 같다. 술에 취해 머리 무게를 감당 못하고 있는 네게 뭐라고 하는 것은, 소 귀에 경읽기겠지.




“근데 자꾸 그 직장 동기가 여자 소개를 시켜주겠다는 거야. “

사회적으로 성격이 무난한 네가 여자 소개해주겠단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넌 지금 내 연인이니까, 그런 소개가 들어온다 해도 네가 잘 대처하면 내가 경계할 일은 없겠지.


“그래서?” 사실 나의 질문은, 네가 혹여나 내가 질투해 주길 바랄까 싶어, 투덜대며 애교 부리기를 원할까 싶어. 이 감정선 안에서도 한번 너를 배려해 보겠다고.


“그래서 계속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었거든. 근데 아까 이거 음료 사려고 기다리는데 걔가 그 여자분이랑 통화를 하는 거야. “

나는 순간적으로 내 눈빛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너를 향한 애정이 아니라, 경계심.


“.. 근데?”

“나 바꿔주길래 ’안녕하세요-!’ 인사하면서 다음에 술 한잔 하자고 했어. “


그리고 그 경계심은 이해할 수 없고 존중도 할 수 없어질 것만 같은 혐오감으로 변해간다.



“아니.. 도대체 왜..? 불편하다고 해야지. 네가 여자소개를 안 받겠다고 계속 거절했는데 그 동기가 전화를 걸었으면, 정색을 해서라도 진짜로 여자소개받을 생각 없다고 말했어야지.”

너는 억울한 듯 나의 두 눈동자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거, 그것도 결국 바람이야. 네가 결국 그 여자분이랑 인사하고, 술까지 한잔 하자고 하는 건. 그냥 여자소개받겠다는 소리잖아. “

“.. 아니, 나는 그게..”

“그렇게 행동하는 데에 그럴듯한 이유가 뭔데, 대체?”

“네가 우리가 밝혀지는 걸 꺼려하니까..”


넌 또 내 핑계다.

“.. 그건 우리를 아는 사람들한테 그렇다는 거잖아.”

“.... 난 널 생각해서 그랬던 거였어.. 그리고 예의상 한 말이지.. 동기가 난감해지잖아.. “

“그냥 여자친구 있다,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 있다 정도로만 말해도 되잖아.”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하다 보니까..”

“근데 왜 나한테는 거짓되게 행동하는 건데-.”

“.. 그랬으면 애초에 이런 일 있던 것도 말 안 했을 거 아냐..”

“나는 누가 남자얘기만 하면 남자 만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거나, 만나는 남자가 있다고 말해. 너처럼 웃으면서 괜찮다, 그러다 다른 남자랑 인사하고 술 먹자 하지 않는다고. “

“.. 알겠어. “


넌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상황을 얼른 무마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교류하지 않았으니 네 딴엔 떳떳한가 보다.






약 한 달이 지나, 이후로 너는 그 동료인 친구와 여럿차례 술자리를 했지만 이후로 딱히 여자소개 소식은 들리지 않아 자연스레 넘어갔다 생각했다.

우리는 암막커튼을 쳐놓고 함께 누워 집에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네게 걸려온 전화, 너의 휴대폰이었다.


동기의 이름 세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할 뿐, 너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왜 전화했지?”

“뭐 해. 얼른 받아.”

“아냐, 안 받을래. 왠지 술 마시러 나오라고 할 것 같아. 근데 피곤하고. 너랑 놀래.”

“.. 그냥 받아서 못 나간다고 하면 되는 거 아냐? “

“난 거절하는 게 피곤해서.” 그래, 생각해 보면 넌 그런 애였지.

그래도 나는 웬일로 네가 나의 맘에 드는 결론을 내려주나 싶었다.



전화가 끊기고 너는 짧은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너는 휴대폰을 가로로 돌려 게임을 했다. 이 게임은 꾸준하게 하는구나, 생각하며 휴대폰 화면을 함께 바라보았는데 , ‘뭐 해?’ 그리고 ’통화 가능해?’ 연속 메시지 두 개, 그리고 곧이어 다시 전화가 왔다.


한 번은 의도적 무시, 한 번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무시. 받을 때까지 할 것 같은 기세로 휴대폰이 울려대었다.


“그냥 받고 안 나간다고 하는 게 낫겠어.”

“.. 피곤한데.”

“거절하는 것도 할 줄 알아야지. 성인이잖아.”

순간 나도 모르게 너를 애 취급하듯 이야기했다.

”.. 알았어. “ 네가 약간은 짜증이 섞인 듯, 대답했다.



“여보세요?”

ㅡ “뭐 해? 나올 수 있어?”

“절-대 안돼. 너무 피곤해.”

ㅡ “아쉽네. 잠시만.”

반대편에서 잠시 부스럭 소리가 울렸다.

ㅡ “여보세요?” 그리고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 여보세요..? “

네가 당황한 듯 대답했다.

ㅡ ”안녕하세요. 저희 저번에 통화했었죠? 그때 한 번 보자고 했었는데, 안 나오셔서요.”


여자의 말이 길어질수록 너는 당황에서 대처를 떠올리려 한 것 같은데, 그 대처 방법은 고작 해서 ‘음량 줄이기’였고, 우리 관계에서 전혀 현명하지 못했다.


반대편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는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때 술 한잔 하자면서 안 나오냐, 잘 먹는다고 떵떵거리더니 이러기냐, 복수할 거다- 같은 내용이었다.

“.. 저, 빨리 친구 좀 다시 바꿔주세요.”

너는 내 눈치를 슬슬 보며, 여자에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다급히 말했다.


“야, 뭐야..”

반대편의 웅얼거리는 소리, 남자목소리였고 낮은 소리가 웅얼거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어. 알겠어. 나중에 얘기하자. 재밌게 놀아.”


그리고 너는 황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턱 근육에 힘을 주어 입을 다물었다. 좋은 소리가 나갈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나의 검은 아우라가 네게도 뻗쳐나가기 시작해서, 너는 식은땀을 흘리며 둘러댔다.

“.. 아, 진짜 사람 불편하게.. 하하..”

“.......”


“화.. 났어?”

“응. “

“아니.. 나는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 “

“네가 처신 똑바로 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그 동기한테 여자 얘기를 몇 번이나 듣는 거야? “

“.. 그래도 이번엔 바로 친구 바꿔달라고 했잖아. “

내가 너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표현해야 하고, 알려줘야 하고, 바라야 하고.

포기해야 할까.


“지금 그 동기한테, 사실 여자친구 있고 여자친구가 싫어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메시지 보내. “

“..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못하니까 그러라고 하는 거잖아. 사실이고. 사실 한마디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려워?”

“아,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빨리 지금 보내. 왜?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쳐줘?”

“.. 내가 만나면 알아서 말할게. 나 진짜 그때 이후로 그 여자애 얘기 한 적도 없어. 그 동기랑 주고받은 메시지 보여줘? “

“응. 봐봐.”


너는 휴대폰을 들어 그 동기와의 메시지창을 보여주었다.

나는 휴대폰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는 한 달 전이었다.

나는 ‘사실 내가 여자친구가 있는데, 여자친구 싫어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아.’라고 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 불편해.’라는 문장을 치려했는데,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더니 재빠르게 휴대폰을 가져갔다.

“아 진짜 보내지 마. 내가 만나서 얘기할게.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어. 못 미더우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 아, 알겠어. 내가 직접 보낼게. “

“지금.”


마지막 인내를 쥐어 짜듯, 나는 휴대폰 화면을 토독거리던 너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30초 남짓 흘렀을까. 너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보냈어?”

“응. 보냈어.”

“여자친구 있다고, 이러는 거 불편하다고 보냈어?”

“응. “

“전송 버튼 누른 거 맞아?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순간적으로 네 동공이 짧게 흔들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응. 보냈어.” 라며 내 눈을 피한다.


“봐봐.” 나는 네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은 아직까지 그 동기와의 대화방에서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

마지막 메시지는, 한 달 전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짓말을 친다. 네가 거짓말을 치고 있지 않은 지 수차례 확인하는 나를 대차게 무시해 버렸다.


“.. 안 보냈잖아.“

“.....” 너는 말이 없다.

“뭐야..?”

네가 도통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묻는다. 어떻게 마음을 먹고 생각을 하면, 네가 다른 여자한테 열어둘 문을 내 앞에서 열어버려 내가 잔뜩 화가 났으니, 내 앞에서 당당하게 닫으라는 데, 왜 그걸 거부하는 거야?



“... 미안해. 자존심도 상하고, 동기랑 불편해지기 싫었어.”



내 마음은 잿덩이가 되어가는 데,

네 마음의 골대는 휑하니 열려 있었다.

수비수가 알아서 수비해 주길 바라는 듯 골키퍼는 눈을 가리고, 팔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숨어있었다.

하지만 그 수비수는 골키퍼를 눈이 멀고 팔 없는 골키퍼로 만들어 놓고는 공격수의 공을 뺏어 자살골을 넣는 수준이었다.





사랑이라는 바보 같은 감정 하나에, 나는 안정이 아닌 불안해져 가고 우리의 이런 기억들로 맺는 끝맺음은 결국 혐오로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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