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7편> 굳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금일 에피소드는 직전 글 <순진한 척, 나를 위한 척> 남자 시점 1편입니다
“여자소개받으라니까.”
“에이, 됐어.”
“왜, 나 진짜 널 좋게 생각해서 그래.”
“뭐 하는 사람인데 그래.”
그냥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할 뿐이다. 주변 사람이 내게 누군가를 소개해준 다는 것, 그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보면 그 주변 사람이 나를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네 생각하는 나는 어떤 수준의 사람일까-? 단지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뿐이다.
“어어, 소개받고 싶구나 너-!”
“에이, 아니야.”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긴 뭘. 여자애한테 말해놓는다?”
“야, 술이나 마셔.”
우리의 잔이 부딪히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나는 회사 동기와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근데, 집에 들어가면 네가 있겠지? 가는 길, 카페를 보고 잠시 들른다.
“음료 사가게?” 동기가 묻는다.
“응. 해장 음료.”
흐릿한 눈으로 간신히, 키오스크에 보이는 커다란 에이드를 담았다. 네가 가끔씩 술을 먹고 이런 설탕과 탄산의 음료를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카드를 꽂아 결제하고 음료를 기다렸다.
“어, 여보세요? 뭐 해?” 옆에서 동기가 누군가와 통화한다.
“.. 어어, 그때 얘기했던 친구랑 있어. 야간근무하고 한 잔 했어.” 나는 놀라 휘둥그레, 동기를 쳐다본다. 뭔, 전화야.
“야. 인사해. 너 소개해줄 여자애.”
“... 아 진짜-!”
“빨리.” 동기가 스피커폰을 눌러 휴대폰을 내게 들이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ㅡ ”네, 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다음에 셋이서 한 번 봐요-! “
“.. 아, 네. 좋죠.”
ㅡ “네, 기대할게요. 들어가세요. 친구 좀 바꿔주실래요? “
동기는 휴대폰을 스피커폰을 해제함과 동시에 자신의 귀에 갖다 붙였다.
“응. 주말이 편하다고? 알았어. 얘랑 시간 맞춰서 알려줄게.” 그리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 아, 됐다니까.”
“좋으면서.”
한 숨을 푹 쉬었다. 네 귀에 들어가지 않길 바란다. 난 그냥, 적당히 맞춰주고 사회생활했을 뿐이니까.
“레모네이드 나왔습니다-!”
카운터에 준비된 파란색의 에이드. 네가 이걸 보고 좋아해 주길 바랄 뿐이다.
.. 난 그저 네가 단순하고, 너그러웠으면 한다.
“.....”
나는 음료에 한 입도 대지 않고 집으로 곧장 가지고 갈 거야. 조금이라도 마시면, 내가 이걸 널 위해 샀다고 하는 말을 거짓이라고 생각할 것 같으니까-.
집에 들어가 네가 이걸 보고, 내가 집 가는 길 네 생각을 했다고, 내가 네 생각을 안 해서 연락이 안 된 게 아니라고. 조금이라도 내가 널 위해 술을 조절해 마셨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
.
하지만 역시나 너는 중요치 않다.
나도 안다. 네가 싫어하는 거, 아는데-. 나도 고치기 힘든 게 있는 건데. 내가 용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왜 네게 하나도 비치지 않는 걸까.
술에 취해서, 나는 네 입에서 들려 듣는 잔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근데 확실한 건,
.. 진짜 확실한 건.
숨이 막혀온다.
“.. 왜, 뭐라고만 하는 거야..”
나는 눈물을 터트렸다. 네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넌 왜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할까. 난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좋아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데-.
“널 위해 내가 이것도 사 왔잖아..”
보기 두려운 너의 표정을, 슬쩍 살피기 위해 고개를 슬며시 들었더니 그와 동시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
그리고 난 네 표정을 보자마자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꽉 깨물고..
네가 이럴 때마다 나는 네게서 멀어지는 것 같다. 아니, 네가 나의 삶에 자꾸만 개입하려고 할 때마다, 네가 비집고 들어오려는 내 삶의 그 문을 닫고만 싶다.
“.. 앞으로 그러지 마. 나도 널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랑해서, 존중받고 싶어.”
너는 잔뜩 찌푸려진 미간에 힘을 풀려고 노력했다. 그 사이 몇 번이고, 네 미간에 경련이 일었다.
넌 끝끝내 나를 버리지 못한다.
이런 일이 있을수록 네가 분명 나를 경계하고 미워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너는 내게 붙어있으려고 한다.
.. 우리가,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다면 조금이라도 나을까.
스치는 생각에, 아찔함을 느낀다.
고개를 작게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나는 네게 안아달라 손을 벌렸다.
네가 침대 매트리스에서 일어난다. 흙빛의 너의 얼굴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넌 나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품에 안기니 묘한 안도감이 일렁인다.
“.. 나, 졸려.”
“.... 응, 얼른 자.” 너는, 나를 기다린다고 또 잠 못 잤겠지. 나는 잠이 많아서, 어떻게든 잠들었을 텐데. 걱정보단 짜증이 좀 더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예뻐해 줘. 뭐라고 하지 말아 줘.
네 사랑의 방식이 이런 거라면,
.. 날 덜 사랑해 줘도 될 것 같다-.
한가로운 오후다.
“일어났어? 더 자도 돼. “
오늘 둘 다 쉬는 날이니, 오랜만에 놀러 가기로 했다. 네가 맞춰놓은 알람에 눈을 떴는데, 너는 역시나 먼저 일어나 있다.
“아냐, 오늘 우리 데이트하기로 했잖아”
부스스한 머리로 눈을 꽉 감았다 떴다. 네가 그런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으며 볼에 입을 맞췄다.
“잠은, 좀 잤어?”
“...... 그냥, 뭐. ”
요즘 부쩍 너의 잠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기력도 없고 낯 빛이 좋지 않다. 나는 잠이 중요한데. 네가 못 자니까 나까지 잠을 설치는 것 같다.
“몇 시에 나갈까?” 나는 몸을 뒤집어 엎드려 휴대폰을 켰다.
네가 답이 없어 얼굴을 슬쩍 봤다. 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하고 있다.
“어디 갈지도 정해야 하는데-, 가고 싶은 곳 있어?“
“...... 우리, 오늘 그냥 집에서 쉴까-?“
“나야 좋지. 난 집에서 노는 거 좋아하잖아. 근데 넌 괜찮아?”
“... 나가고 싶긴 한데, 힘이 없네.”
“쉬고 싶어?”
“잘 모르겠어.”
“뭐, 늦게라도 마음 바뀌면 그때 나가면 되지.”
“.... 응.”
나는 괜스레 신이 난다. 집에서 쉬는 게 최고지-.
나는 네 옆에서 영상을 보다, “이것 봐봐.”하며 같이 보기 시작했다. 둘이 낄낄대며 보고 있는데, 회사 동기한테 전화가 온다. 이 자식 뭐지. 아니, 왜지.
평소 이 친구랑 전화를 한 적은 그다지 없었다. 근데 갑자기 전화라, 술을 잘 마시고 자주 마시던 친구라 이건 분명 누군가랑 술 마시기로 했거나 마시고 있는 자리에 나오라고 하려는 의도 같다.
며칠 전, 그리고 몇 번이고 이 친구랑 술을 마실 때마다 여자친구와 싸웠다. 아니, 일방적으로 혼이 났다. 친구가 술을 너무 잘 마셔서, 자존심 부리다 보니 항상 취했던 것도 있고 여자가 있던 자리가 잦았다.
동기의 이름이 뜬 화면, 그걸 본 너의 표정이 급격히 굳는다.
나는 당황스럽다. 왜 지금 이 상황에 전화를 하고 난리지-?
그냥 받고 싶지 않아. 전화를 받아서 네가 만족스럽게끔 받아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멍하니 화면을 쳐다본다.
“뭐 해. 얼른 받아.”
너는 뒤돌아 누워 너의 휴대폰을 본다. 아, 너의 이 검은 아우라-. 사람을 미친 듯이 무섭게 만드는, 숨 막히는 아우라.
전화가 끊기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네가 내게 눈 길 한 번 주지 않는 동안, 나는 조용히 함께 보던 영상을 껐다. 나도 너의 옆에서 조용히 휴대폰 게임을 켰다.
잠시 흘러가는 정적에, 네가 내 휴대폰을 슬쩍 봤다.
”아까 보던 거 마저 볼래?“
네가 고민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때, 휴대폰 진동이 두 번 울렸다.
‘뭐 해?‘ 동기에게서 온 메시지.
‘통화 가능해?’
제발, 나는 휴대폰 상단 알람을 네가 보지 않았길 바란다.
“......” 하지만 네가 조용해 짐에, 본 게 분명해진다.
그렇게 내 세상은 잠시 좌절하고, 눈치 없는 내 휴대폰은 곧바로 전화가 왔음을 알린다.
나는 계속해서 무시했지만, 동기는 끈질겼다.
“거절하는 것도 할 줄 알아야지. 성인이잖아.”
너의 마지막 말에는 뼈가 있다. 너의 한쪽 눈썹이 잠시 움찔거리며 이야기하니 나는 가시밭에 간신히 서있는 기분이다.
순간적으로 네가 나를 못 미더워함이 짜증이 난다. 내가 뭐, 그렇게 잘못이라도 할까 봐? 바람피운 적도 없는데 왜 나는 맨날 이렇게.. 넌 왜 날 이렇게까지 못 미더워해 하는 걸까-.
“.. 알았어.” 하지만 너의 아우라에 나는 결국, 또 주눅이 든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동기의 목소리는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보아하니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들려오는 뭐 하냔 말에 한잔 걸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친구는 취하면 나오라고, 뭐 하냐고, 어디냐고 집념이 강해지던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에 아직 거절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피곤하다.
나는 얼렁뚱땅 대답하고 재빠르게 끊으려 했다.
..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바는 그랬다.
ㅡ ”여보세요?“
곧바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나? 아무리 떠올라도 그다지 친근하지 않은 목소리다.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를 더듬거리며 응했다.
ㅡ ”그때 한 전 보자고 했었는데, 안 나오셔서요. “
식은땀에 절여져 가는 나 자신이 느껴졌다. 빠르게 곁눈질로 너를 살폈는데 애석하게도 모든 게 들린 듯 네 눈빛이 차갑다 못해 허공에 멈춰있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음향을 조금씩 낮추며, 그
여성분께 옆에 있는 동기를, 내게 이런 고난과 역경을 안겨준 자식을 바꿔달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왜 그러냐, 어색하냐, 얼굴 보기로 하지 않았느냐, 저번에 제대로 전화를 못해서 이렇게 건 거다.. 등의 말들이 일방적으로 쏟아졌지만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자 그제야 동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왜, 통화 못하는 상황이었어?“
“어어. 알겠어. 나중에 얘기하자. 재밌게 놀아.”
묘한 동문서답으로 나의 다급함을 알린다. 내가 만약 연락이 두절된다면, 그건 너 때문에 내가 연인 손에 죽은 걸 수도 있어.
ㅡ “알겠어. 나중에 될 때 말해줘.”
나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들어 너를 살폈다.
“.. 아, 진짜 사람 불편하게.. 하하..” 멋쩍은 듯 웃어 보였지만 대답 없는 너와, 어색해진 기류, 그리고 차가워진 공기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아니, 솔직히 내가 잘못한 건 없지 않나? 네가 나보고 전화를 받으라고 했잖아. 그래놓고 왜 네가 기분이 상한 거지-? 괜스레 억울하다.
나는 어쩔 수 없었지 않았느냐 둘러댄다. 여기서 “네가 받으라며--!” 등의 말을 했다간 당장 전쟁이 일어나겠지? 그래. 눈치껏 행동하자.
“네가 처신 똑바로 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