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속마음 건드리기

<번외 편 : 동기 시점> 순진과 멍청함은 한 끝 차이

by 오늘의간호사



어느덧, 나도 연애를 하지 않은 지가 벌써 5년이 넘어 들었다.

주변 친구들은 물론이고 형제자매까지도 연애를 하고 내게 자랑을 해댈 동안, 그다지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그 누구를 만나도 설렘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 깊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5년 전 내 가장 최근의 연애를 끝나칠 때가 어땠더라-.

변했다-.라는 말과 익숙해졌다, 혹은 편해졌다,라는 말은 사실 한 끗 차이나 다름없다.

식어가는 나의 마음을 이미 머리로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이 짜게 식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점점 귀찮아지고, 퉁명스러운 나의 태도에 그녀는 지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울며 불며 내게 사랑을 요구했었다.


물론, 내가 그녀를 불안하지 않게 하면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다.


내가 내 연인을 불안치 않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 나이가 들 수록 그러한 것들이 사소한 듯,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과연 지금 이 긴 연애 공백기를 깬다고 해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걸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여자인 친구가 주변에 들끓어도 그 누구에게도 아무 쓴소리 듣지 않는 이 자유로움에 익숙해져 버린 내가 과연-.







직장에서 만난 동기가 하나 있다.

어리숙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어쩌면 귀여움을, 어쩌면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남자 동기이다.


이 친구, 시간이 지나면서 1-2년을 남짓 함께 일하다 보니 어리숙함을 떠나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 이 친구와 술을 먹다 보면, 나보다는 많은 연애 경험을 가진 친구다 보니 과거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오늘도 우린 같이 당직을 서고, 아침에 회사 앞에 있는 국밥집으로 향했다.


“아, 솔직히 말하면 작년에 나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일하다 혼자 엉엉 울어버렸다니까-?”

나는 그 친구의 우는 장면이 상상이 되어서, 괜스레 바보 같으면서도 귀여울 것 같아 ‘푸하하-’하며 웃어버렸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사람은 없고?”

너는 잠시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잠시 굴렸다.

“... 없지. 왜?”

“어어-, 없는 거 맞아? 눈 돌아가는 거 봤어-!”

“아이 참, 없다니까.”

그래, 뭐 이런 걸로 굳이 내게 거짓말을 치겠느냐만은.


“그럼 여자소개받을래?”

“하하, 아냐. 괜찮아. 지금은 누구 만날 그건 아니라서-.”

“에이. 왜? 내 친구 중에 진짜 괜찮은 친구가 있어서 그래. 내가 너 좋게 생각하는 거 알잖아.”

“.. 글쎄. 누군데?”

“어어, 이봐봐. 마음 있으면서.”

“.. 아, 하하. 참, 장난이야. 진짜 괜찮아.”

너는 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 자식, 외로운 거 맞네.


우리는 술을 한 잔 더 기울였다.

지금은, 오전 9시다. 어느덧 우리 앞에 쌓여있는 초록색 병이 네 병째다. 앞에 있는 이 친구는 취한 것 같기도 한데. 눈이 풀린 채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제 슬슬 갈까? “

“.. 어, 어. 그러자. “

휘청하는 몸사위로 일어난 친구를 빠르게 붙잡았다.

“아, 괜찮아.”

친구를 부축이려다 강한 척하는 손짓과 말투에 재빠르게 포기했다.


저번에 같이 술 마시다가 옆테이블과 싸운 적이 있다는 걸 깜빡했다. 당시, 그 테이블에 있던 분들이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친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을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그분들이 대인배였다.


“야, 가는 길에 카페 좀 들르자.” 국밥집 문을 열고 나오니 친구가 얘기했다.

“카페는 왜?”

“해장 음료 사가게. 사줄게.”

“사준다면 야, 뭐.. 마다할 이유가 없지.”

친구는 웃으며 작게 육두문자를 읊조렸다.


국밥집 코앞 키오스크 앞에 서 친구는 음료를 골랐다. 블루레모네이드 큰 사이즈를 하나 담더니, “자, 너도 골라.”라고 한다.


근데 그때 전화가 한 통 왔다.

“어, 그 친구다.”

“응? 누구?”

나는 너의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아까 국밥집에서 앞의 친구에게 소개해주겠다고 언급했던 내 고등학교 친구다.


“.. 어, 옆에 있는 데 인사할래?”

나는 낄낄대며 얘기했다. 옆에 있는 동기는 ‘야, 뭐야-!‘라며 약하게 투덜거렸지만, 이내 내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여보세요-.”

손사래 치던 태도는 온 데 간데없고, 밝게 인사를 나눈다. 자기 이름을 얘기하더니 “나중에 한 잔 해요-!”라는 말까지 끝끝내 마무리멘트까지 완벽히 날린다.


전화를 끊은 동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안 받는 다니까 아..” 라며 투정 부렸다.

“너, 그러기엔 나중에 한 잔 하자했어.”

동기는 뻘쭘한 듯 입술을 씹으며 내게 음료나 고르라 한 마디 했다.







며칠 후 우리는 업무를 같이 끝내고 나왔다.

“그때 그 여자애 소개받을 거야?”

“아니, 잘 모르겠는데.. 그냥 나중에 같이 있을 때 한번 전화 줘. 기회 되면 나가지 뭐. “

“아아 소개는 부담스럽고 친구로서 같이 보는 쪽으로?”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나중에 연락하자며 황급히 들어갔다.


.

.


그렇게 시간이 몇 주가 흘렀다. 생각보다 그 여자애를 만나는 데에 까지는 시간이 꽤나 소요되었다.


“그때 통화했던 내 회사 동기 기억나?”

“음, 아-. 그때 오전인가, 낮에 통화한 사람? “

“어어. 너 만나면 자기한테 전화해 달라 했거든.”

“왜? 여기라도 온대? 그때 나중에 한잔 해요-라고 하긴 했는데. “

“그렇지. 나도 옆에서 들었어. “

“근데, 난 거기에 대답도 안 했는데 바로 너한테 휴대폰 돌려준 것 같아서 좀 어이없었거든.”

“아, 그랬어? 그럼 지금 한 번 전화해 볼까? “

“뭐, 그러던지.”


나는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머로 들려오는 신호음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동기는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어어, 받았네. 뭐 해? “

“... 그냥 집에 있지. 왜?”

“잠시만.”

나는 곧바로 앞의 친구에게 내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번에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셔 가지고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앞의 친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 너 바꿔달라고 엄청 조용하게 말하는 데..?”

”엥?... 어, 여보세요? “

“어, 나중에 통화하자. 미안해. 끊을게. 잘 설명해 줘. “


뭔가 살기 어린 분위기가 느껴지는 반대편의 음성에 황당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동기에게 메신저 하나-,

‘사실 내가 여자친구가 있는데, 여자친구 싫어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아.’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니, 앞의 친구가 왜 그러냐 묻는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굳은 표정을 애써 숨겨본다.

“.. 여자친구가 있다는 데..?”

앞의 친구도 눈꺼풀에 힘을 풀어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 도대체 나한테 어떤 사람을 소개해주려고 한 거야, 너는?”







“어제 잘 들어갔냐?”

“응, 잘 들어갔지. 근데 뭐냐, 너.”

나는 여자친구가 언제부터 있었던 거냐고 네게 물었다. 순간 동기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때 통화도 하고 같이 한 잔 하자고 그랬어서, 나는 그 친구랑 있을 때 너한테 전화해도 되는 줄 알았지. “

.. 친구니까, 적어도 속이는 일은 없길 바랐다. 나, 너 때문에 그 친구도 기분 상하고. 꽤나 당황했거든.


“장난이라고-. 있겠냐, 여자친구가. 그랬음 쓰레기지. “

근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납득이 가지 않는 말들 뿐이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아닌 지 판가름되지가 않았다.


“피곤해서 그랬어. 나가기도 귀찮고. “

나가기 귀찮아서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라 한 후에 내게 여자친구 때문에 못 나간다 한다-, 정말 정성조차 없는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더 이상 캐물어봤자 규모만 커질 것 같단 생각과 함께 덩달아 나까지 피곤해질 게 눈에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나 혼자 없던 일로 정리하기로 했다.


동기는 내게 여자소개를 시켜주려고 한 사실을 누가 아느냐 물었다.

당연히 아무도 모른단 소리에, 동기는 계속 비밀로 해달라 하더니 황급히 자리를 떴다.



동기가 치는 거짓말들은 정말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황당하였다. 어찌 보면 바보같이 순진해서 투명하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로 멍청한 아이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연애를 하면서, 나쁜 남자친구 역할을 하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아, 연애 그거 피곤한 거였지.

5년간 쉬어 온 내 연애는 아무래도 더 후로 밀려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