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동아줄이어도, 아직은 동아줄인걸.

<여자 9편> 바람이라는 욕심

by 오늘의간호사

썩은 동아줄




네가 진실을 말하는 경우, 굳이 격하게 맞다 아니다라고 한 적은 없었다. 무슨 질문을 했을 때, 너가 제 발 저려 이야기할 때에는 항상 극도로 흥분하는 걸 떠나, 때로는 말을 필터링없이 격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 그건 가스라이팅인가‘라고 느낄 쯔음엔 이미 늦었다.






“나 조만간 해외에 갈 것 같아.”

“어디로?“

“동남아쪽.”


퇴근 후 네 옆에 누워 휴대폰을 보다 곧 해외일정이 있음을 너에게 알린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음, 7월 말 19일부터 28일까지.“

“.. 꽤나 길게 가네?” 네가 휴대폰 달력을 보다 이야기한다. 말 끝에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삐죽인다.


“응, 맞지.”

네 입꼬리의 삐죽거리는 듯한 고요한 움직임이, 나와 같은 뜻일 지는 모르지만-.



너는 최근에서야, 너의 술마시는 모습에 질려버린 나를 위해서 술자리에 나가지 않고 있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네가 술자리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술 자리에서 선을 지키는 것인데-, 네가 그게 조절이 안된다 하니. 이게 파국이 보이는 연애일지라도 우리 관계를 위해 생각해 보았을 땐, 그래 차라리 네가 술자리 자체를 안가는 것이 낫겠다 싶다.



..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내게 다가오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도살장에 끌려오듯 표정도 굳어져만 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자유분방한 삶을, 그 누구의 질타도 없이 살아온 네가 누구 눈치볼 것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무식하게 취할정도초 술을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리던 네가.

나를 만나 그 자리를 못나가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 하지만, 나도 그걸 원한 적은 없는 거였는데. 네가 ‘술자리 참여‘만으로도 만취가 조절이 안된다고 하니. 만취한 너는 내가 떠오르지를 않는 다 하니-..

다만 상처받고 싶지 않을 뿐인 건데-. 나도 네게 내 상처를 표현하고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점점 익숙해져만 가는것 같아 그런 상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일 뿐인데-.


너는 대화보단 침묵을, 자제보단 불참을 택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요즘 우리 사이가 좀 소원해져서. 자꾸 네가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나는 이번 출장이 우리 관계에 어쩌면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럼, 일은?”

“이직할거같아. 돌아오면.”

“에? 사직서 이미 작성했어?”

“응. 어차피 연차 소진해야된다면서 좋아하는 거 같더라.”

“.. 나참, 진짜 돈 주기 싫어하는 고용주들 많아. 사직 여행같은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해외 출장을 가야된다는 데 갈 사람이 없어서, 사직 전에 다녀와 달래. 그래서 연차 좀 더 보태서 길게 가는 거야.

"그것도 웃기네. 이직은 근데 어디로?”

”그게, .. 너네 회사.“

나는 잠시 머뭇댔다. 뭐 이전부터 둘이 항상 얘기하던 부분이지만 조금 갑작스러운 부분도 있어서.


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잠시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기뻐하는 게 아닌 건가.

“.. 우리 이전부터 내 회사 문제점에 대해 계속 얘기해왔고, 얼마전엔 트러블도 크게 있었고.. 너도 너네쪽으로 이직하라고 많이 얘기했었어서. 저번에 면접봤어.“


“.. 그렇구나. 잘했네.” 너는 이번에도 입술을 삐죽였다. 다만 고개를 숙이지 않아 그 표정을 내가 다 보고 말았다. 모종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걸까-.

나는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 10일동안 너 없으면 난 어떡해?”

“뭘 어떡해?” 푸흐흐-, 너가 괜히 투정부리는 모습에 잠시간 웃음이 새어나왔다.


“.. 심심하고 외로울 것 같아”

“평소에 혼자 잘 놀면서-, 뭘.” 말 자체는 시큰둥하지만, 솔직히 너가 ’외로움‘때문에 힘들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나는 스며들듯 미소지으며 답했다.



근데 가만보니, 너는 내가 없는 너의 삶이 정말로 외로울 것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만 같다. 왜인지 모르게 너의 동공에서 ‘또르르-‘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 그, 그럼..“

“응?”

너는 허공에 굴려대던 눈동자를 나에게 맞췄다. 살짝 흔들리는 동공에, 쉽사리 꺼냈다 혼이 날까 두려워하는 열한살배기 아이같단 생각이 들었다.


“술자리 나가게 해달라고?”

"..." 넌 당당하게 답하지 못했다.

“친구 만나서 술마셔도 될거냐고 물을거잖아. 내가 언제 안된다고 한 적 있어? 가서 적당히만 마셔. 또 어디 다치지 말고.”


그래. 내가 너한테 술마시러 다니지마라, 누굴 만나지 마라- 한 적은 없었다. 다만 술을 잘 마신다 역력한 몇 명과 만나면 너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다 블랙아웃이 와 나라는 존재를 무의식에서 지워버려 연락이 두절되고, 휴대폰이 고장나고, 이불에 토사질을 해놓고, 무릎과 얼굴이 까진 채로 귀가했다.


“입사 동기들 모임.. 나가면 안 돼?”

그리고 늘, 그 동기들과 만날때마다 순탄하게 들어온 적이 없다.


처음엔 그 친구들을 만날 때 적당히 마셔봐라, 얘기했다. 하지만 자존심상 허락을 않는다는 답변을 다섯번 넘게 듣고, 약속 장소에 나간다고 할 때마다 표정이 굳어만 갔었다.




가장 원하는 바는, 그래. 나가서 진탕 마시든 뭐하든 연락이 되었으면 좋겠다. 큰 것도 안바라니 화장실갈 때랑 집갈 때만. 네가 이제 술자리에서도, 만취를 하더라도 내 무의식은 너를 생각하고 너를 사랑한다고. 나는 변하고 있으니 너는 이제 나를 조금씩 믿어달라고.

.. 그걸 원했지만, 수차례 실패했어서-.


내가 상처받을 게 뻔한 그 상황을 예상하고, 예정대로 상처받을 수 있을까-.


나는 고민이 될 때마다 표정이 너무 굳어버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어쩔 땐 긍정적으로 고민을 할 때도 있는데, 그냥 싫은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어 오해를 사곤 했다.

근데 이런 나의 표정에, 너는 재빠르게 “당연히 나는 안간다고 했지. 어우-, 절대 안 가. 걔네랑 술마시면 너무 힘들어.” 라고 오바하며 손사레를 쳤었다.

네가 가고 싶지만 내 눈치를 보느라 싫다고 하는 거,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안 가겠다 먼저 말하는데 내가

굳이 가도 된다 말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었다.


근데 역시나, 가고 싶었던 자리였다.


하지만-,

아, 그래. 얼마전에 네가 입사 동기들 열댓명이 있는 단체 메신저에서 모임을 갖자는 말이 올라왔다 하였다.

당시 내가 어찌 반응해야할 지 솔직히 고민되었다.


이번에도 또 그럴 일이 벌어지겠지.

10일중에 며칠이나 그럴지-. 그게 관건이다.




“.. 그래. 거긴 가. 그 모임에는 저번에 그 여자소개시켜준다고 했던 동기는 없지?“

“응. 걘 없어.”

“내가 없는 10일동안, 이번년도 입사한 여자 신입사원들이랑 그 친구만 만나지 마. 나머진 다 괜찮아.”


너는 어깨를 흔들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참나-, 구속의 길은 본인이 들어와놓고.

나는 네가 괘씸하여 ‘으이그-’ 하며 볼을 잡았다.


연애를 여서일곱번을 하면서, 내 연인한테 누굴 만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응! 그렇게 할게!” 너는 신나서 답했다.

뭐가 좋다고 너랑 같은 회사로 옮겨갔을까. 나는 너가 회사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내 뒷통수를 쳐왔는지 이제 눈 앞에서 보게 될텐데.



.. 지금 회사가 너무 최악이니까, 그 회사의 업무환경은 익히 들어왔으니까, 집에서 가까우니까-..

애써 섣불렀을 지도 모르는 나의 결정에 합리화를 더해본다.






해외출장을 떠나는 날이 임박해왔다.

나는 본가에 가서 짐을 싸야 했기에, 이틀 전인 17일 가까스로 회사의 짐을 대충 정리하고 본가로 향해야 했다.

"나 다녀올게."

"응. 잘 다녀와." 너는 누워서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출근 길 부스스한 머리로 달려나와 안아주던 풋풋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근데, 그냥 그런대로 별 생각이 안든다.



제발 아무 밀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다 엉덩이를 일으켰다.

와이파이가 안터지는 곳에 있다보면 술 먹고 연락 안되는 것까진, 그냥 바쁘게 살다보면 신경이 안쓰일 지도 몰라.


그니까-, 그 이상의 사고만 치지 않아도-

우리의 관계는 조금 가까워질 지도 몰라.


예전만큼은 아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