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 나를 지켰다.
2026년 설 연휴는 한마디로 보람찬 연휴였다.
시작은 불안했다.
아들 늘이가 장염에 걸렸다.
점점 말라가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연휴시작 전날 아내는 급히 휴가를 냈고 우리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아이의 체온과 표정을 살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숫자와 계약서, 일정표가 하루의 중심이 되는데
그 며칠 동안은 오직 아이의 얼굴만이 나의 기준이었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고 설 당일이 되자 아이는 서서히 회복했다.
그 작은 변화가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친누나는 조카를 위해 선물을 가득 들고 집으로 왔다.
나는 아내의 오랜 설득 끝에 예약해 두었던 피부과에 다녀왔다.
지저분했던 점과 평판사마귀를 제거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부모님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손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해 보였다.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전과 고기를 굽고 지지고,
손자의 재롱에 맞장구를 치고,
최근 시작했다는 보드게임을 온 가족이 함께 하자고 권했다.
아이는 편파적으로 자신만의 승리를 쟁취했고,
어른들은 져주면서도 누구 하나 불만 없이 웃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나는 부모님 집 앞 1분 거리에 있는 손세차장에 차를 맡겼다.
1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세차를 맡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뿌듯했다.
올해 칠순을 앞둔 어머니를 위한 가족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밤늦게,
부모님과 함께 잠든 아들을 뒤로하고 아내와 몰래 집을 나섰다. 심야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를 극장에서 다시 보았다.
단종의 시간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크게 울지는 않았다.
다만 몇 장면에서는 눈물이 조용히 맺혔다.
왕의 곁에 살았던 한 인간의 삶,
권력의 그림자 속에서 흔들리던 마음들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길어졌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와 새벽 공기를 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는데,
두 시간 동안 붙들고 있던 감정이 서서히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진이 빠진다기보다,
묵직한 여운이 몸 안에 고요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오래간만에, 조금은 깊어진 사람이 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 집의 낯선 잠자리는 조금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얼굴에는 웃음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미뤄두었던 시간을 채웠다.
아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을 하고, 큐브를 맞추며 저녁을 보냈다.
마지막 휴일에는 여행 준비를 위해 아들의 여권사진을 찍으러 동네 작은 사진관을 찾았다.
아내는 7살 꽃 같은 아들의 얼굴을 엉망으로 찍는다며 하루 종일 뾰로통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조차 귀여웠다.
좋은 서비스, 좋은 공간을 경험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내.
10년 전 연애하던 시절의 모습과는 또 다른 단단함이 보였다.
장염으로 한동안 못 먹었다며 돈까스가 먹고 싶다는 아들과 외식을 하고 돌아왔더니,
아내의 친한 언니가 보낸 아이 책과 보드게임 상자 열 개가 도착해 있었다.
집은 순식간에 어질러졌다.
그리고 그 어질러짐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또렷한 감정을 느꼈다.
행복.
그 단어를 마음속에 아껴 담았다.
이게 행복이 맞는 것 같아서, 함부로 쓰지 않고 꺼내보고 싶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연휴는 늘 불안했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고, 숫자와 일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연휴는 달랐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중간중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어떤 사업 확장이 가능할지,
올해 어떤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지,
우리 회사의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불안이 아니라 가능성의 언어로 떠오르는 생각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바빴고, 너무 평범했고,
다행히 모두 아프지 않았고,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하며 웃으며 잠들 수 있었다는 것.
이 평범한 행복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가 계획한 것들을 채우려 한다.
하루가 쌓이면 나의 무기가 된다.
그 무기들로 사업을 버티고,
단단해진 나와 동료들이 각자의 가족을 지킨다.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설 연휴,
나는 그 힘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찬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