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콩이 되셨습니다!

by 오늘비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달력을 살핀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열 닷새. 딱 보름이 지났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날도 보름뿐이다. 서른 다섯 해 인생을 통틀어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럽고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던가. 소문으로만 들었던 일, 말도 안 되는 괴담이라고 웃어넘겼던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난 그날 이후. 지나가고 남아 있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선물인 동시에 고문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왜 나란 말인가? 특별히 착하게 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파렴치하게 살지도 않았다. 형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타락과 변절, 타협의 유혹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마음 한 번만 바꿔 먹으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알량한 정의감과 사명감이 번번이 내 발목을 붙들었다. 그래서 선을 넘지 않으려고 애썼고, 넘지 않았다. 훌륭한 형사는 아니었지만 썩어빠진 형사도 아닌 딱 적당하게 경계선에 두 발을 걸친 채 살아왔다. 그것이 내 자랑이라면 자랑이고 부끄러움이라면 부끄러움이었다. 짧지 않은 형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 많은 것들이 계획보다는 우발적인 것, 우연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마치 무작위로 뽑혀 나오는 로또 번호처럼. 이렇게 생각해도 왜 나인지, 왜 지금인지 억울한 마음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분명해지는 건 이것뿐이다. 나에게 벌어진 이 일은 온 우주의 관점에서 벌어진, 결과를 알 수 없는 룰렛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하긴 그렇다. 누구도 랜덤을 이길 수는 없다. 멈출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시간. 남은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방 문에 달린 작은 창이 열리고 물 한 잔과 각종 영양제가 담긴 통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격리구역에 갇힌 이후 보름 내내 이것만 먹었더니 정말 지겹다. 얼큰한 김치찌개에 라면 사리 하나 넣고 휘휘 저어서 소주 한잔 곁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으로도 입 안에 군침이 가득 고인다. 하지만 저들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단숨에 영양제와 물을 털어 넣고 침대에 다시 드러누웠다.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상쾌했다. 개운한 기분도 잠시 뿐, 통제할 수 없는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보름 전의 아침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던 그날로.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 늘 그렇듯 들려오는 길거리의 익숙한 소음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유인지 모르겠다. 작년 연쇄 살인범 검거 이후 첫 휴가니까 거의 일 년 만인 것 같다. 범죄 현장을 누비다 보니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제는 오히려 낯설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신나게 게으름을 피우리라. 자리에서 일어나 주전자 뚜껑을 열고 정수기 물을 담아 가스 레인지 위에 올렸다. 물 끓는 소리에 가스 불을 끄고 여과지 안에 수북하게 담긴 커피 가루 위로 뜨거운 물을 조심스럽게 붓기 시작했다. 하얀 머그잔에 다 내려진 커피를 담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고 어제 읽다 펼쳐놓은 책을 한쪽으로 치우다가 정면에 놓인 TV에 눈길이 쏠렸다.


콩이 있었다!!!


검게 반사된 화면 안에 머리 통이 콩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눈을 비볐다. 콩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갔다. 욕실 거울 속에 틀림없는 콩 대가리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허둥지둥 욕실 밖으로 나와 온 집안의 커튼을 쳤다. 밝고 따스했던 햇살이 사라지고 어둠침침한 그림자만 남았다. 오랜만의 여유가 공포스러운 악몽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벨 소리를 찾아 방 안을 휘저었다. 핸드폰은 홑이불 안에 있었다. 아내였다. 그제야 잠에서 깼을 때 아내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어났어?”

“으, 응!”

“아침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준비하느라고 먼저 나왔어. 내가 어제 미리 말한다는 걸 깜박했지 뭐야. 미안해요.”

“그랬구나.”

“톡 남길까 하다가 그래도 목소리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전화했어.”

“응, 괜찮아. 고마워.”

“아무튼 오늘은 행사 끝나면 현장에서 직퇴 할 거야. 정리하고 뭐 하고 하다 보면 평소랑 비슷하게 집에 도착할 것 같아. 자기는 오늘 휴가라고 했지? 오래간만인데 푹 쉬어. 그럼 이따 저녁에 만나요.”

“응 그래, 수고해.”

“참참, 자기 오늘 저녁… 콩… 요리 어때? 생각해 보고 톡 보내. 바이. 사랑해. 자기가 자랑스러워.”

“응, 나도…”


통화가 끊어진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봤다. 지난 겨울 집 앞에서 찍은 아내의 사진이 배경화면에 깔려 있었다. 구질구질한 담장과 현관문 앞에 선 아내는 쓸쓸하면서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내도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내가 깨기 전에 집을 나간 걸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밝고 유쾌하고 나 밖에 모르는 아내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알았다면 나를 먼저 깨웠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콩으로 변한 머리가 무겁게 흔들렸다.


사람들이 실종된다는 신고가 늘기 시작한 건 일 년 전부터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연쇄 살인이나 납치와 같은 범죄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사를 거듭할수록 기묘한 일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종된 사람들은 사라지기 직전에 주변 사람들과 갑자기 연락을 끊고 집 안으로 잠적해 버렸다. 그리고 험상궂은 표정의 남자들이 그들의 집을 탐문하고 돌아다니는 장면을 봤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했다. 그들에 대한 단서를 추적했지만 늘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막히기 일쑤였다. 실종된 사람들은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연령도 성별도 직업도 고향도 다 달랐다. 그래도 굳이 공통점을 꼽으라면 딱 하나가 있었다. 바로 소문이었다. 그들이 음식으로 변해버렸다는 소문. 그래서 험상궂은 남자들에게 어딘가로 끌려갔다는 소문. 그렇게 끌려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먹힌다는 소문. 기후위기니 뭐니 해서 먹을 것이 부족해졌다가 최근에 나아진 것이 바로 이렇게 먹을 것으로 변해버린 사람들 덕분이라는 그런 소문.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고기, 채소와 같은 신선식품들 중 일부는 그렇게 공급된 것이라는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소문.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확인할 수도 없는 뜬소문. 그런데 내가 그 소문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문이라는 건 늘 이런 식으로 갑자기 현실이 되곤 한다.

소문대로라면 곧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그들에게 잡혀가면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음식 대가리를 한 돌연변이 인간에게 돌아올 것은 분명해 보였다. 철저한 격리와 잔인한 조사, 실험으로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지 이득이 되는지를 판단하려고 할 것이다. 실험실의 모르모트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결심을 굳힌 나는 스마트폰을 내던지고 잡동사니들이 꽉 들어찬 다용도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용도실 구석에 쑤셔 박아둔 낡은 트렁크를 꺼냈다. 트렁크를 열자 번호 자물쇠가 달린 검은 상자가 나타났다. 상자를 조심스럽게 꺼내 바닥에 내려놨다. 번호를 돌렸다. 8, 2, 5, 5. 끼릭. 자물쇠를 치우고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다. 비합법의 상황을 대비해 아무도 모르게 감춰두었던 물건이었다. 이 물건을 이렇게 쓰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권총에는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잠금장치를 풀고 총구를 콩 머리의 가운데에 갔다 댔다. 이렇게 끌려갈 수 없다. 실험실의 모르모트가 되지 않더라도 이런 꼴이 된 이상 어딘가에 숨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온 세상이 나를 두려워하며 내치고 해코지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살아서 그런 치욕과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지금 내 손으로 끝내는 것이 더 좋으리라. 이제 방아쇠에 걸친 엄지 손가락만 까딱하면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순간 천둥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내가 들고 있는 권총 소리가 아니었다. 아파트의 현관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여러 개의 군홧발이 집 안으로 난입하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용도실의 문이 열리고 눈만 덩그렇게 드러난 시커먼 마스크가 나타났다. 그리고 소리쳤다.


“여기다, 잡아! 무장했다. 조심해!”


마스크를 쓴 사내가 소리를 지르자 다른 사내들이 사냥개처럼 달려들어 총을 들고 있는 내 팔을 뒤로 꺾어 바닥에 짓눌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 팔목이 부러질 듯 아픈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확보했습니다!”


사내들의 보고에 나를 발견하고 잡으라고 소리를 질렀던 마스크가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리고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원담 씨! 원담 씨! 당신은 현 시간부로 인류 식량으로 확보되었습니다. 비상식량 관리국에서 남은 한 달 동안 안전하게 관리할 것입니다. 더 크고 싱싱해지시기 바랍니다. 당신 덕분에 인류가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내가 나에게 예의를 갖춰 거수경례를 했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도 차렷 자세를 취하며 예의를 갖췄다. 경례를 마친 남자가 나에게 유기농 비료 한 컵과 생수 한 병을 내밀었다.


“아내, 제 아내와 연락하게 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사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켜서 화면을 터치한 후 내게 내밀었다.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잠시 흔들리던 화면이 멈추자 아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영상 속의 아내는 나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대화가 재방송처럼 지나갔다. 전화를 끊은 아내는 미련 없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던지고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뒷모습이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아내의 뒷모습은 내게 많은 말을 던지고 있었다. 놀람과 안도, 슬픔 그리고 분노. 그리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지만 설렘까지.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깨운 건 문 밖 경비 담당자의 목소리였다.


“아내 분이 보내셨네요.”


방문에 달린 작은 창이 열리고 꽃다발이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던 해바라기였다. 스무 살 시절 우연히 봤던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던 꽃. 어울리지 않는 꽃을 좋아한다고 아내가 많이 놀렸었지. 꽃다발에 작은 봉투가 하나 꽂혀있었다. 봉투를 꺼내 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냈다. 카드와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당신 몫까지 내가 즐겁게 살게. 바이! 사랑해! 고마워!’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서 열대 휴양지를 배경으로 아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구질구질한 골목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배경이었다. 보름 후면 나는 콩 요리가 돼서 먹히고 말 텐데. 너는 그렇게 행복하다고? 그렇게 즐겁게 놀고 있다고? 랜덤의 신이 너라고 봐줄 것 같아? 기도해라! 그날이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흥! 간신히 억눌렀던 억울함이 백배 천배 강력해져 울컥 솟아올랐다. 움켜쥔 주먹 안에서 카드와 폴라로이드 사진이 구겨졌다. 구겨진 것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날이 갈수록 퇴화되는 목소리를 짜내 방안 가득 소리를 질렀다.


“에이 씨파! 자 먹고 자 사아라! 너어느 개차으 주 아냐? 드고 바. 에이 씨파 코이 모야 코이? 더 머시느 거도 이느데. 저마 조가타!”




* 특별히 한 줄 요약 해드림

: 아침에 일어나니 콩이 되어버렸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오늘비'의 뱀발 한뼘

: 이빨을 닦다가 맞은편 거울을 들여다봤다.

초췌한 꼬라지의 남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래도 뭐 콩은 아니네.

감사했다.

아싸, 하루 더 벌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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