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존 합니다. 그래서 선택 맞춤형입니다.

by 오늘비

피치 퍼즈 색깔의 립스틱, 싱싱한 유기농 브로콜리 한 다발 그리고 앙증맞은 미니 자전거 피규어.

잠깐! 기다려봐. 난 당신이 뭘 고를지 알 것 같거든.

내가 속일 수도 있지 않냐고? 그럼 이렇게 하자. 여기 이면지에 뭘 고를지 미리 써 놓을 게.

당신이 고르고 나서 한번 확인해 보는 거지.

어때?

좋아! 그럼 … 다 적었어. 보이지 않게 이렇게 두 번 접어서 핸드폰 아래 두는 거지.

준비됐어? 그럼 출발!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걸 고를 줄 알았다고?

어때 맞지? 종이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어떻게 알았냐고?

이거 내 영업비밀인데. 에이 기분이다.

당신 목 뒤에 있는 옅은 아토피 자국. 섬유 유연제나 향수, 화장품 냄새도 없고 네일도 하지 않았지.

머리에 그 흔한 왁스도 안 발랐더라고. 적당히 마를 체격인데 그렇다고 근육질은 아니고.

면 소재 옷을 입고 있고.

운동보다는 좋은 먹거리에 더 관심이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렇다면 선택은 당연히 브로콜리지. 어때?

당연하지 내가 이걸 몇 년이나 했는데.

저 쪽에 있는 저 사람?

당신이 한번 맞춰봐. 뭘 골랐는지. 자전거? 에이 아니지. 이렇게 눈썰미가 없어서야 원. 립스틱이었어.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화려한 외모, 옷차림.

가만 보면 저 옷들도 죄다 올해 유행할 스타일이거나 컬러지.

그런 건 어떻게 아냐고?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거든. 사람에 대해서.

그러니 당연히 알 수밖에.

암튼, 저렇게 자신을 멋지게 가꾸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립스틱을 고를 것 같았고, 결과도 그랬지.

당신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저 사람?

어디 보자…. 흠….. 자전거네. 틀림없어.

저 튼튼한 다리근육을 좀 봐봐.

그리고 당신은 못 봤겠지만 아까 이 방에 들어올 때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는데

후다닥 자세를 잡고 바로 서더라고.

그건 균형감각이 탁월하다는 뜻.

마지막 결정적 단서. 저 사람이 입고 있는 윗도리는

바로바로바로 짜잔~ 바람막이 점퍼. 더 볼 것도 없지. 빙고! 어때 내 말이 맞았지?

혹시 예상했던 것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은 없었냐고? 네버! 전혀 없었지. 단 한 명도.

그때그때 대상자들에게 어울릴만한 물건들로 바꾸는 탓도 있지.

하지만 이건 과학이거든. 취향과 선호, 경험에 의한.

그래도 자유의지라는 게 있지 않냐고?

아유, 대단한 철학자 나셨네. 봐봐. 자유 의지도 결국은 어디서 영향을 받겠어?

그렇다니까.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 지식, 문화 따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지.

완전히 엉뚱한 선택은 없다니까.

인간은 말이야…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는 것에서 뭔가를 결정하고 고르는 거야.

전혀 모르는 것, 처음 보는 것은 모르니까 못 고르는 거지. 모르는데 어떻게 골라? 안 그래?

당신도 마찬가지지. 나를 알고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렇지? 몰랐으면 왔겠어? 안 왔지. 절대로.

그래서 과학이라고 하는 거야. 예외가 없거든.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지 않냐고?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나한테는 그래. 이 일을 해 온 몇 년 동안 한 번도 예외가 없었으니까.

왜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느냐고?

어느 날이었어. 매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방법을 정했지.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어. 일을 마치고 나서 뒷정리를 하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매너리즘인지 한계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의욕도 흥미도 없는 기계적인 의무감만 남은 것 같았달까?

혼자 다 책임진다는 건 그렇다는 걸 몰랐던 거야. 좋기도 하지만 지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는 걸.

일을 그만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 그러다가 깨닫게 된 거야.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고르게 하자.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두 명보다는 세 명의 생각과 취향이 더 다양하고 창의적일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마지막 순간에 느끼게 될 두려움과 고통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던 것 같아.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는 대단히 배려심 높고 친절한 사람인 거지 내가.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보시는 것과 같아. 대성공!

나와 당신들 모두의 만족도가 거의 두 배 이상 상승했다고 봐도 될 정도니까. 이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지?

또? 아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안돼. 이제 마무리를 해야 돼.

이것도 과학이야. 끝내야 할 시간에 정확히 끝내는 거.

당신은 첫 번째 방으로. 방에 가면 큰 가마솥에 소금물이 끓고 있을 거야.

그리로 들어가면 돼. 머리부터. 에헤이~ 왜 이래. 브로콜리 안 데쳐봤어?

자자 얼른 머리부터 입수! 여기 빨리 끝내고 립스틱한테 가봐야 돼.

거긴 더 번거로워. 묶어야지, 그라인더 돌려야지. 머리 위로 조금씩 내려오게 해야지.

그래 립스틱 갈려 나가는 것처럼 해야 하니까. 뒤처리도 아주 지랄 맞지.

자전거? 사실 그게 제일 오래 걸려. 번거롭기도 번거롭고. 그래서 여기서부터 서두르는 거야.

바퀴대신 묶어서 평로라에 올려놓고 죽을 때까지 굴릴 거거든.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오래가더라고.

거의 정신을 잃었는데도 멍하니 눈을 뜨고 눈물 콧물 토사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꼴이 제법 볼만해.

모든 번거로움을 보상받고도 남을 정도지. 또 정신줄을 놓고 수다를 떨고 있었네. 이제 정말 그만!

잘 가시고, 먼저 간 사람들한테 안부 전하고, 곧 다음 사람들이 따라갈 거니까 서운해 말고.

진짜 안녕!

오늘도 멋지게 취향 존중, 본인 선택 맞춤형 살인에 성공한 나를 위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취향을 존중하며 승승장살인 할 나를 위해서!

힘찬 박수! 짝짝짝! 거기 뭐 해! 박수 안 치고! 이봐이봐! 그런 박수는 내 취향 아니야. 확 죽여버리기 전에… 다시 해!




* 특별히 한 줄 요약 해드림

: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어렵게 어렵게 선택하면 뭐 하겠어? 죽기밖에 더하겠어?


* '오늘비'의 뱀발 한뼘

: 생사가 달린 선택의 순간에 꼭 필요한 꿀팁!

제일 좋은 것보다 제일 필요한 거,

제일 하고 싶은 것보다 못하면 제일 억울할 것,

모두에게 좋은 것보다 나한테 제일 이득 되는 것 고르기.

다 잊어도 기억해야 할 핵심 포인트!

꼭 하나만 골라야 하는지

여러개 골라도 되는지 반드시 물어보고 확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