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깨어난다

동체성심(動體醒心)

by 문과체질 이과생

무기력한 하루, 반복되는 자기혐오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하루가 무너지는 느낌이 싫었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고나서부터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평일에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했다.

물론 형식적으론 그러했고 주말 출근은 물론이고 야근도 일상이 되었다.

석사 생활 때와는 또 다른 압박감이 매일매일 날 짓눌러왔다.

졸업이 정해져 있지 않은 학위 생활은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았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몸은 무겁고, 생각은 흐릿해지고, 무력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감각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오늘은 왜 아무것도 한 게 없지?'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 걸까?'

하루 끝에 자기혐오가 올라오고,
다음 날도 똑같은 패턴으로 무너진다.

그렇게 나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내 모습을 보더니 마치 폐인(廢人) 같다고 했다.

너무 많이 망가져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에도 난 무기력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사는 게 맞나?'

그 질문을 품고 있던 어느 날,
답은 의외로 뻔한 단어 안에 있었다.
운동.

어디서나 듣던 흔한 해법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실행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부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서 운동을 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눈 돌릴 그 잠깐의 시간조차 내 학위 생활엔 허용되지 않았다.

체중은 날이 갈수록 불어갔고 행색은 갈수록 초췌해져 갔다.

지친 겉모습처럼 속마음도 외롭고 무너져갔다.


처음부터 대단한 걸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걷기.

버스로 이동하던 거리를 걸어보고자 했다.
대학원까지 도보로 40분 거리
매일 걸어서 돌아오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 길은 언제나 똑같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매일 달랐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걸으면서

내 마음이 항상 같을 순 없었다.

처음의 다짐이 무색할 만큼

걷기 싫은 날도 꽤 많았다.

내 마음처럼 환경도 매일 달랐다.

어떤 날은 비가 왔고, 어떤 날은 바람이 거셌다.

하지만 환경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다.

나 자신과 해보기로 한 자그마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이게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걸어온 날에는 이상하게도

하루가 조금 더 정돈됐다.

그렇게 쉽게 짜증 나던 일들이

이상하리만큼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내 의지로 몸을 움직였다는 감각 하나만으로
마음속에 작은 성취가 쌓였다.

조그마한 변화가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 변화는 조금씩 눈앞에 선명해졌다.



몸을 움직이며 찾은 리듬

걷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느꼈다.
그러면서 어릴 적부터 즐겨했던
러닝과 턱걸이를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다.

대학원을 들어오기 전에는 틈이 날 때마다

매일매일 해오던 것들이었다.

매일매일 해오던 것들이 쉽지 않았다.

그때와 지금의 내 몸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물론 마음에도.


나에겐 이제 무엇보다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해졌다.

학교에서 걸어서 오는 시간 이외에도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가볍게 땀을 흘리는 정도면 충분했다.
운동의 강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내 몸이 오늘도 움직였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지탱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실험이 꼬인 날보다 운동을 못 한 날이 더 찝찝해졌다.
서류 및 행정 작업에 지쳐도,

논문 피규어가 맘에 들지 않아도,
원하는 과제 및 저널에서 떨어져도,

운동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균형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운동은 의무가 아니다, 회복이다

사람들은 운동을 힘들고 숨차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해야 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도 지겹고

스스로도 굳이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에게 운동 루틴
오히려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주는 습관이다.

하루를 통제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무기력이 나를 삼켜버리지 않게 버티기 위해 운동을 한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같이 움직인다.
생각이 명확해지고,
어질러졌던 감정들이 정리된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운동을 하고 와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운동은 내게 성취감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작은 것을 꾸준히 해내는 것.
그게 쌓이면
나 자신을 다시 믿게 되는 감각이 찾아온다.

내 몸을 움직이는 일
내 삶을 움직이는 일이다.

꾸준한 운동으로

우울했던 내 삶에 숨을 불어넣는다.


어쩌면 나는
자포자기하던 나의 본능과 싸우는 중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무너지고,
어떤 날은 다시 일어선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붙잡는다.

운동은 그 작은 가능성의 증거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도 나는 조금 더 나아졌다.
몸을 움직였고, 마음도 움직였다.

이 글도, 그 움직임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