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의 대화

삶을 살아가는 주관과 가치관

by 문과체질 이과생

잠시 동안 아니 주말 내내 내 머릿속은

시끄러운 소리들로 가득 찼다.

주말에 오랜만에 만났던 인연과

그 인연들의 연결점 때문에 고민했다.

주요한 고민은 다름이 아닌

사회적 타이틀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주요한 중심점이 되어서

대우받고 존중받으며 살 것인가,

조용히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의 충돌로 머릿속을 울렸다.


나의 가치관은 사실 성과에 있지 않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시험에서

100점을 맞을 때보다 중요한 시험에

합격해서 주변에 축하를 받았을 때보다도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똑같은 루틴을

매일 반복하면서 꾸준하게 지켜나가는 게

더 큰 행복과 성취감으로 이어졌다.

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오랫동안 나를

성찰해 보고 관찰해 본 결과 운동을

하면서도 그 과정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누군가에게 기록을 보이기 위해

대회에 출전해서 경쟁하며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해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이번에는 마라톤을 뛰고 싶어서

신청을 해보려고 했는데 대회

신청 기간을 아쉽게 놓쳤다.)

누군가 나를 볼 때 이런 행보를 보이는 나를

최고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과가 무서워서 시도해보지도 않고

피한다고 생각하거나 더 나아가 도전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결과를 무서워하거나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거나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내가 정말 그랬다면

내 모든 선택이 도피처였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전공, 내가 선택한 대학원,

내가 선택한 운동.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면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어서 난 일찌감치 학문의 길은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대학원 안에서 저번 달에

JCI 10% 이내에 드는 논문이 accept

되었고 비슷한 수준의 논문이 곧 나온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3km 달리기 + 턱걸이

50개 + 팔굽혀펴기 30개 + 스쿼트 40개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고

도전하고 실패하면 실패했지,

도전하기 전에 도망친 적은 없다.

도전할 수 있는 나이에는 도전한 후에

내 능력과 적성을 확인하고 안 된다는 것이

확인되면 과감히 그만두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보이거나 적성이라고

생각이 드는 일에는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미친 듯이 매달렸다.


내가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은

스스로 정한 운동을 수행하고 있을 때

관심 있는 책을 천천히 읽을 때 그리고

작성하고 싶은 주제의 글을 작성할 때다.

가만히 앉아서 반복적으로 하는 일에는

굉장한 무기력함과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세상에 주어진 대부분의 일은

반복적이거나 정답이 주어지지 않은

그러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머릿속에서 번뇌가 오갈 때,

나를 나로서 제대로 봐주고 어른으로서의

대화가 가능한 한 사람이 생각났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 항상 정답을

내주기보다는 내가 나만의 정답을

낼 수 있게 나의 선택을 존중해 줬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준을 객관적으로 나보다도

더 잘 알고 말해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바쁜 사람을 붙잡고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예의와 존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주말 내내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전화가 가능한 순간이 왔고

내가 가지고 있는 앞으로의 진로와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평소에는 이런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던 내가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니

처음에는 당황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내 이야기를 잘 귀담아

들어주는 게 느껴졌고 내 말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내가 고민하는 주제들에는 직업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가치관의 충돌에 의한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대해서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도 인내심을

가지고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들어주고 기다려줘서 고마웠다.

내 이야기를 잘 귀담아듣고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스스로 하고 방향을 세우고 플랜을 세우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게 멋져 보인다.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네가 만난 사람들 물론 대단한 사람들인 거 맞다.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철저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착각을 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남들이 하는 것 중에 좋아 보이는 걸 제대로 구분해야 한다.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쟁취할 수 있다. 하지만 구분을 제대로 못하면 직업으로 삼은 그 일이 싫어지고 잘 못하게 되는 순간들이 오더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네가 잘하는 일을 계속 꾸준히 하다 보면 네가 잘하는 일에서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다.

학문의 끝이라고 볼 수 있는 교수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한 분야의 연구를 계속해서 교단에 서있는 교수라는 직업도 대학원생들에게 과제를 시켜서 수행하는 하나의 전문직이다.

네가 하고 있는 그 일에서 성과를 내고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잘하는 일이라고 느끼니까 지금까지도 계속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잘하는 일을 계속해서 이 분야에서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같이 접목시키는 게 좋아 보인다."


이런 생각은 현명할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느꼈던 그리고 경험했던

연륜과 고민들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나는 성숙한 어른들과의 대화가 좋다.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나에게 해준 말을 곱씹으면서 사람들의

삶은 하나의 줄을 세워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내가 잘하는 일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인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전하고 경험함으로써 주변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을 수 있는 본인만의

가치관과 직업을 가지게 되는 거 같다.

우리 모두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본인의 적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내가 정말 원하고 갈망하는 것을 알고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