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으로 기울어지려는 야구장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휘갈겨 쓴 이름, 혹은 그림. 본인을 증명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서명'은,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인물과 잠시나마 닿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인'이 됐다. 어떤 분야에서든 유명인의 사인은 좋은 기념품이다. 야구에서도 다르지 않다. 사인은 팬서비스의 가장 대표적인 방안이고, 특히 어린이들은 선수들의 사인 한 번에 울고 웃는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젊은이에게는 낭만을, 국민들에게는 여가선용을!'
한국 야구의 초기 슬로건인데, 가장 잘 알려진 건 맨 앞부분이다. 멋진 경기장에서 던지고, 치고, 달리는 더 멋진 선수들은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기 충분했다. 2000년대를 지나며 야구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국제대회에서의 호성적 덕이었다. 2002 월드컵 대표팀이 일약 스타가 됐던 것처럼, 야구선수들도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프로야구는 순식간에 우리나라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됐다. 선수들의 연봉 규모도 급속도로 성장한 건 덤.
'사인받기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초중반. 팬서비스 나쁜 선수들 명단이 커뮤니티에 퍼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야구팬들끼리의 문제였던 이 불만은 2018년을 기점으로 공론화됐다. 지상파 뉴스에 야구선수들의 팬서비스 논란이 보도됐기 때문. 아이들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일부 선수들의 모습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침 당시는 한국 야구의 수준 저하가 논쟁거리던 때였다. 국제대회의 호성적으로 인기를 얻었기에 성적이 떨어지자 위기가 찾아오는 건 당연했다.
'그깟 공놀이'라는 단어는 2010년대 후반 야구계를 상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그래도 야구 인기는 하락하는데 팬서비스 논란까지 발생하자, '팬 없이 야구는 그깟 공놀이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맞는 말이다. 공을 잘 던지고 잘 치는 일에는 그 어떤 생산성도 없으니까. 위기감을 느낀 야구는 급하게 변화하려 했다. 프로야구 선수의 당연한 덕목으로 좋은 팬서비스가 제시됐다. 이정후 등 새롭게 등장한 스타 선수들은 팬의 중요성을 재차 역설했다. 그 덕에 갑을 관계처럼도 보였던 잘못된 선수-팬 관계는 수평을 향해 갔다.
그러나 시소는 수평에서 멈추지 않은 것 같다. 관성 그대로 반대편에 치우쳤다. 지난 2일, 영상 하나가 논란이 됐다. KIA 타이거즈의 투수 이의리는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해 시즌 첫 승을 거뒀다. 2002년생 투수 이의리는 KIA 팬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선수 중 하나. 경기가 끝나 버스를 타러 가는 이의리에게 유니폼과 펜이 날아들었다. 한 명이 테이프를 끊자 두세 장의 유니폼이 잇따라 이의리 앞에 떨어졌다. 사인해 달라는 요구였다. 아니, 이는 강요에 가까웠다. 선수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팬서비스 논란과 '그깟 공놀이'라는 자조적 표현 속에서, 기존과는 반대된 갑을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 아닐까. 팬 없이 프로야구는 있을 수 없다. 동시에, 우리가 프로야구를 통해 얻는 대체불가능한 경험은 선수들 덕분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기본 되어야 한다. 스포츠는 타 분야에 비해 비난의 수위가 높다. 경기를 보며 뱉는 욕설은 '팬심'이라는 단어 아래 용인된다. 그 정도면 된 것 아닌가. 선수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너무 쉽게 잊는 듯하다.
지난 1월에 괌 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모든 식당에 공통적으로 명시된 문구. '우리 직원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즉 직원을 존중하지 않는 고객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서비스는 그런 것이다. 의무가 아니며, 팬서비스도 그렇다. 한참 걸려 되찾은 균형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직원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