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그 어떤 야구장과도 가깝지 않은 집에 사는 아이에게, 야구장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TV 속으로 매일같이 그 장소를 봐온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꼭 가보고 말겠다고. '직관'이란 걸 해보고 말겠다고. 야구를 2011년 중반에 좋아하기 시작했으니 꼬박 2년이 걸렸다.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한다. 내 첫 야구장은 2013년 7월 31일이었다.
청주에서 태어난 아빠는 자연스럽게 한화 팬이 됐다. 예전에는 화를 자주 냈는데, 이제는 초연해 보인다. '보살'의 경지에 마침내 다다른 듯하다. 정말 대견하게도 어린 시절의 나는 한화를 피했다.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SK의 팬이 됐다(혹여나 이 글을 읽게 될 한화 팬분들께도 미리 사과합니다..). 뚜렷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다.
문제는, SK의 홈구장이 인천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당시에도 또 지금도 용인에 살고 있다. 혼자서 구 하나도 건너가 본 적 없는 초등학생에게 인천은 너무 멀었다. 부모님을 설득할 수밖에. '내가 이만큼 야구에 진심이다!'를 주장하고, 부모님이 이를 납득하시기까지 2년이나 걸린 모양이다.
'내가 이만큼 야구에 진심이다!'를 주장하고, 부모님이 이를 납득하시기까지 2년이나 걸린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대대로 '미리미리병'에 걸려 있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 여유 있게 도착하는 병. 내 군생활 두 번째 휴가날, 9시에 맞춰 데리러 오신다던 부모님은 7시 반에 도착하셨다.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포항이었다. 앞서 말했듯 집은 용인이고. 새벽 4시에 출발하셨다고 했다.
나도 비슷하다. 약속시간이 12시고 집에서 한 시간 걸리는 거리라면, 두 시간 전에 출발한다. '늦는 것보다는 이른 게 수 백배 낫다'는 말이 내 좌우명이다. 이 때문에 너무 일찍 오지 말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지만, 약속 시간이 다가올 때의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은 늘 별로다. 부모님을 보고 배웠기 때문일 터다. 그런데 같은 피를 타고나 같은 집에서 자란 누나는 약속시간을 지키는 법이 없다. 약속이 12시면 12시에 집에서 나가는 그런 인물이다. 신기하다.
그런 병에 걸린 탓에, 경기장에 도착한 건 오후 2시 30분이었다. 경기는 6시 30분. 당시에는 입장 시간이 지금보다 조금 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리 경기장에 들어가 선수들의 사인도 받았다. 사인해 준 선수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박희수, 윤길현 선수 감사합니다 !!). 한동안 학교에서 롤모델을 물어보면 박희수라 적어 냈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TV로만 보던 야구장은 생각보다 작았고 더 푸르렀다. 하늘 위로 높게 뜬 야구공을 찾느라 애먹었던 기억은 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경기가 시작했고, 한 번 더 깜빡할 사이에 끝났다. 사실, 그날 경기는 실제로 매우 빠른 편에 속했다.
SK의 상대는 NC였다. NC의 선발투수는 이재학. 어느 정도 야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SK는 이재학에게 지독하게도 약했다. 2013년 7월 31일. 이재학은 NC 다이노스 창단 첫 완봉승을 달성했다. SK가 친 안타는 단 두 개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신나게 응원가를 부를 일이 두 번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내가 첫 '직관'의 날짜까지도 도저히 잊을 수 없게 되어버린 이유다. (그 후로 수년간 이재학을 상대하는 경기는 피하려 노력했다.)
무려 10년이 지나고, 그 후로 수도 없이 야구장을 간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은 망한 직관이었다. 완봉패를 당하는 경기라니, 일 년 내내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데. 그러나 그 기억은 긍정적으로 남았다. 잔디가 내뿜는 초록빛에 압도되고, 우상 같던 선수들에게 사인받으며 덜덜 떨고, 9회에 나온 안타 하나에 신나 소리치던, 순수하게 그 모든 순간에 설레하던 나를 어떻게 나쁘게 기억하겠는가. 처음 만난 야구장은 그런 의미였다.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잔디가 내뿜는 초록빛에 압도되고, 우상 같던 선수들에게 사인받으며 덜덜 떨고, 9회에 나온 안타 하나에 신나 소리치던, 순수하게 그 모든 순간에 설레하던 나를 어떻게 나쁘게 기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