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야구'를 검색하면 도저히 셀 수 없을 만큼의 컨텐츠가 쏟아진다. 그 어떤 분야와 마찬가지로, 공식 구단의 작품이기도, 개인의 노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하던 2011년 즈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공인이나 단체가 유튜브를 운영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기. 컨텐츠의 양, 질 모두 지금에 비하면 얕은 연못에 불과했다. 야구에 너무 깊이 빠진 나는 그 연못의 바닥을 샅샅이 뒤져 거의 모든 컨텐츠를 다 본 상태였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결국 좋아하는 팀과 선수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싶어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늘 '인기가 많지 않은 것'을 선호했다. 꼭대기보다는 산 중턱의 돌부리를 꼭 붙잡고 버티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한때 빠졌던 힙합 음악에서도, 아직도 좋아하는 해외축구에서도 내 '최애'는 독특하다. 남들에게 말하면 '나 그 팀 좋아하는 사람 처음 봐!'라거나, '이름만 알고 노래는 들어본 적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이 가파른 산을 오르고 올라 꼭대기에 도달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하고 다음 이야기를 찾아 떠난다.
그런 성격 때문에 야구에서도 조그마한 체구의 백업 선수에 눈이 갔다. 힘이 세지도, 달리기가 빠르지도 않은데, 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 거기다 나와 이름이 같았다. 이 선수는 현 SSG 랜더스의 김성현이다. 여전히 팀 최고의 선수였던 적은 없지만, 김성현은 이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입지를 다진 중요 선수 중 하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신인급 후보 선수에 불과했고 당연히 유튜브에 영상은 없었다. 내가 처음 만든 영상은, 김성현의 안타 모음 영상이었다.
2014년에 김성현은 안타 113개를 쳤다. 클립 113개를 한 땀 한 땀 모아 연결해야 했다. 영상 편집이랑 거리가 멀었던 나는 <윈도우 무비 메이커> 사용법도 간신히 익혔다. 무식한 시간 싸움이었다. 거의 2주가 넘게 걸려 완성한 첫 영상은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으나, 그다음부터는 꽤 큰 반향을 불러왔다. 여러 팀 선수들의 활약상을 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던 거다. 나와 같은 입장의 팬은 예상보다 많았다. 그러니까 이미 유튜브에 존재하는 모든 야구 컨텐츠를 섭취하고 다음을 간절히 기다리던 이들. 공급이 그토록 적은 시장에서는 내가 올리는 조악한 영상마저도 양질의 컨텐츠였다. 그렇게 나는 '방구석 야구 유튜버'가 됐다(영상 무단 사용은 엄연한 저작권법 위반이다. 당시는 그런 사실이 지금만큼 알려지기 이전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으며, 군 복무를 마친 지금까지도 '방구석 야구 유튜버'는 내 소중한 취미다. 유튜브 시장의 폭발적인 확대와 함께 저작권 의식이 강화되며 채널의 방향은 처음과는 달라졌다. 경쟁자도 많아져 예전처럼 높은 조회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지기도 했다. 그저 야구팬에 불과한 나는 권위자들(은퇴 선수들, 구단 공식 채널, 혹은 언론사 채널까지도)을 경쟁 대상으로 삼을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야구 근처에서 맴돈다. 아직도 스타 선수들보다 유망주나 백업 선수들의 이야기가 더 좋은 나는, 그들의 삶을 예쁘게 포장해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문화에 도움이 되는 한 계속 머무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