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놓친다는 걸 왜 모르시나
10여년 전. 인테리어를 잘 모르는 나지만 이사를 하면서 으레 품는 생각이 있었다. 공간을 어느정도 취향에 맞게 수리하여 살고 싶었던 것. 하지만 '나중을 생각해서' 집은 수리하지 않고 쓰는 것이 나을거라는 어른들의 의견에 밀려 나는 도배만 새로 하고 이 집에 이사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집에 살 당사자인 남편과 나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데 그 때는 왜 우리 생각이 뒷전이었나 모르겠다.
이 집에서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며 공간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었다. 하다못해 인테리어 필름이라도 씌워 분위기를 전환해 볼까 여러 차례 고민도 했다. 이사올 당시 나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 없다보니 집 어느 곳 하나 정 가는 곳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뭐라도 조금 고쳐보자 싶었을 때 계속해서 '나중에 팔 때'를 생각하라는 어른들의 말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나중에 팔 때가 대체 언제인지 우리는 그 집에 8년째 살고 있다.
재테크를 이유로 이사를 생각하며 내 공간을 내 취향에 맞게 꾸며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누구의 의견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가 생각한 인테리어를 실현한 내 공간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비록 이사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내 생각대로 꾸민 내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결혼 이후 줄곧 내 집에 살지만 내 집인 것 같은 느낌은 없었던 이 곳을 정말 '내' 집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인테리어를 바꿔 살아보자는 남편의 제의가 참 반가웠다.
인터넷으로 우리 아파트 설계도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구역별로 도면을 뽑아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공간 재구성에 들어갔다. 설계도면을 뽑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니 마치 우리 부부가 인테리어를 잘 아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일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인테리어를 해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우리 부부였다. 아이디어를 얻을 겸 집 근처 인테리어 사무소를 찾아 간단한 상담을 진행해 보니 우선 당사자인 우리 머릿속에 공간에 대한 명확한 컨셉이 있어야 그 다음 이야기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설계도면을 찾아 보게 된 것이다.
만일, 무리해서 이사를 했다면 인테리어는 또 한 번 도배로 끝났을 것이다. 집 마련에 가능한 예산을 모두 쏟아부어야 하니 인테리어에는 최소 비용밖에 할애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실내 공간 변경에만 전심을 다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그 날을 생각하며 이리저리 아이디어를 내 보는 그 시간이 마냥 즐거웠다. 결혼 후 처음으로 자유의지로 내 공간에 대한 선택을 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팔 때를 생각해서 그냥 살아라. 아이들 어린데 좀 크고 나면 고쳐 살아라.' 나중에, 나중에. 나중을 생각하느라 지금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집에 들어설 때마다 그 당시 어른들 말이 생각나 아쉬움만 깊어졌다. 그 때 그냥 내 의견대로 해 볼 걸. 하다못해 주방 싱크대라도 바꿀걸.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그렇게 생각하곤 했었다. 그렇게 8년을 지냈다.
이제야 나는 내 집을 '내' 식대로 바꿔볼 기회를 맞이했다. 누구의 의견에도 휘둘리지 않고 공간을 재구성 해 볼 생각이다. 아, 물론 남편 의견에는 어느 정도 휘둘려줄 의향이 있다. 이 공간에 늘 함께 할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