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식품에서 파는 가장 좋은 것
엄마의 무릎과 맞바꾼 시간들
나의 모든 시간은 엄마의 건강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버이날이라도 될라치면 그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져 딸의 마음은 괴롭기만 하다.
엄마는 2년여 전 무릎 수술을 했다. 나이에 비해 일찍 닳아버린 연골이 밤마다 엄마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도 수술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주변의 근거없는 만류에 차일피일 수술을 미루던 차,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짜증스러웠다는 엄마는 참을 수 없는 아픔에 무릎 수술을 결심하고 바로 수술을 이행했다.
수술만 하면 활개치고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는 엄마. 의사는 무릎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려면 적어도 6개월은 재활 치료를 받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한다고 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는 장사 걱정부터했다. 아빠 혼자서는 힘들거라며. 사람을 구하면되지. 하는 나의 말에 엄마는 '우리집 일이 잔손이 많이 가. 엄마가 해야 돼. 인건비도 비싸고...' 라고 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기 직전부터 운영하게 된 식품가게였다. 장사의 지읒자도 모르던 부모님이 트럭장사, 시장장사를 거쳐 어렵게 마련한 가게였다. 엄마가 매일 활기차게 손님맞이를 하며 성실하고 인심좋게 이어오던 동네 장사라 엄마 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건비가 비싸서 선뜻 쉴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 사람만 구해. 내가 어떻게든 돈을 댈게." 제대로 쉬지 못하면 무릎 회복이 더딜 뿐더러 수술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내 귀에 쟁쟁 울렸다. 내 말에 엄마는, '돈은 엄마가 내지 왜 네가 내. 걱정 마.' 하고 웃어보였다. 우리를 길러내느라. 제대로 키워내느라 밤낮없이 써대서 닳아버린 무릎이었다. 엄마를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가 잠시 가게일을 돕기로 하셨다. 동네 사정에 밝고 손이 빠른 아주머니라 엄마 마음이 놓였을 터였다. 그럼에도 의사가 권한 6개월은 꿈도 못꿨다. 한달여를 겨우 쉬고 엄마는 가게에 복귀했다. 편치않은 걸음으로 가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일을 하는 엄마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요즘도 엄마가 편히 걷지 못할 때마다 그 때 덜 쉬어서 그렇다고 괜히 엄마를 타박한다. 사실은 맘놓고 쉬게 해주지 못한 내 지갑사정이 미운거면서.
엄마의 절뚝거리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던 시간이 들어있다. 건강했던 자신의 몸과 시간을 모두 쏟아부어 자식들을 길러낸 엄마의 지난 날이 엄마가 지나간 자리마다 소복히 내려앉았다.
엄마의 건강에 빚진 나의 시간을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갚아 팔팔했던 엄마 무릎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엄마의 딸로서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산다. 그것이 도리라고 여기며.
우리가게 이름은 '좋은식품'이다. 다녀가시는 손님마다 이 집 물건이 마트보다 훨씬 좋다며 그야말로 '좋은' 것만 판다고 고마워하신다. 이제는 신선식품 온라인판매에 밀려 오가는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찾아주는 분들이 계셔서 아직은 계속해야한다고 엄마는 말한다.
좋은 것만 파는 좋은식품을 일구는 나의 엄마. 엄마에게 전하고싶다. "엄마, 우리 가게에서 가장 좋은 게 뭔지 알아? 그건 바로 엄마야. 행복한 소식을 전하는 손님에게는 화답의 미소를, 마음아픈 일이 있는 이에게는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엄마의 존재가 우리 가게에서 가장 잘나가는 상품이야."
엄마 인생의 첫 단골로서 딸은 말하고 싶다. 무수히 받은 걸 이제는 갚으며 살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