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시작된 남매대전. 내가 보기에 하등 문젯거리도 아닌 것을 가지고 목청 높여 싸우는 와중 간간이 섞여 들리는 '엄마' 소리는 마치 엄마도 이 싸움에 동참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너희들이 그렇게 원한다면 이 엄마도 목청을 높여볼까?
"그만."
안 들리나보다. 아직도 '네가 먼저', '누나가 먼저'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그으마안."
좀 더 목소리에 힘을 주고 길게 늘려본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태세로 서로의 말꼬리를 잡고 '응, 아니야.', '반사!' 를 반복하고 있는 두 아이에게 이미 나의 존재는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다.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늘 자애로운 엄마이고 싶다.
"그마아아안~~~!!!!!" 결국 꽥 소리를 지르고 만다. 동그란 네 개의 눈동자가 깜빡거리며 나에게 꽂혔다. 이마를 짚은 내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싸움을 멈췄다.
"다투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야. 다만 엄마는, 서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더라도 그렇게 미운 말로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싫어. 서로 좀, 이렇게, 응? 좋게 말할 수는 없겠어?" 다투던 아이들 만큼이나 빠르고, 크게 말했다. 아... 오늘도 우아한 옆집 엄마 따라잡기는 글렀군.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다만, 그런 얘기는 아이들이 듣지 않을 때 할 수는 없겠어?" 남편의 짜증에 '아니, 화는 내가 내야지, 왜 자기가 화를 내?' 생각했다. 도리어 화를 내는 남편의 모습에 속만 더 상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쓰는 이분법적 말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희들, 이거 안 치우면 앞으로는 더 이상 이 장난감 못 가지고 논다!', "목욕할 때 자꾸 싸우면 앞으로는 아예 욕조 목욕은 못한다!" 처럼. 이거 하지않으면 무엇무엇 못한다는 식의 훈육 방식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고 책에서 읽은 터였다.
그래서 말해버렸다. 그런 식으로 꼭 말해야겠냐고. 그 말투는 아이들 행동을 바르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반감만 사기 딱 좋다고 내가 늘 말하지 않았느냐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방식은 틀렸다. 이건 분명 아이들이 듣지 않는 곳에서, 차분하게 했어야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날선 말투로 내 감정을 드러내기 바빴다. 며칠 전 다투던 아이들처럼.
옛말에 틀린 것 하나 없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건 집에서나 밖에서나 진리인데. 어째서 그 진리는 집에만 오면 자꾸 까먹는단 말인가. 직장에서는 그저 상대를 배려하며 서로 조심하면서. 정작 가장 배려해야 할 사람과 사는 곳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미운 구석이 있더라도 좀 좋게, 응?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어?' 마음이 나에게 말했다.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오빠, 우리 말하는 패턴을 확 바꿔보자. 서로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생겼을 때 상대에게 화부터 내지 말고 좋은 말투를 써 보는 거야. 나는 우리가 그랬으면 좋겠어. 우리 요즘 유독 쉽게 서로한테 화를 내는 것 같아. 좋을 때 좋은 말투 나오는 건 당연한 거고, 서운하거나 맘에 안 드는 걸 이야기할 때도 예쁜 말씨로 얘기해 보는 거야. 나부터 해볼게!"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요즘 일하느라 고생 많아." 다정하게 말했더니 남편 얼굴에 꽃이 피었다. "당신도 잘 다녀와." 나에게 건네는 남편의 말투는 향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