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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Feb 16. 2020

또라이 옆에 또라이

봉준호 감독님도 그렇다는데 뭐

어느 모임에나 또라이가 한 명은 있다고.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사람이 안 보인다면 바로 당신이 그 한 명이라는 흔한 이야기. 알고는 있다. 그런데 정말 그간 내가 속한 모임에는 그 흔한 또라이 하나 없었다. 그렇다면 그 한 명이...바로 나?




봉준호 감독이 자신을 이르러 'fucking weirdo' 란다. 우리말로 최대한 순화해서 옮기면 '제대로 미친놈' 정도일까. 나는 봉준호 감독님의 저 표현을 보자마자 '또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 머릿속 또라이는 한 가지에 몰입할 줄 아는 이, 미쳐본 적 있는 자, 그야말로 덕후. 딱 그 느낌이다.


미치지 않으면(不狂) 미칠 수 없다(不及)는 말이 있다. 어느 하나에 미쳐봐야 그 일의 끝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태어나 하얗게 불태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경험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에 꽂히고, 그것에 미쳐보고 이른바 '덕후라이프'를 살아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인생의 맛을 한 가지는 더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또라이로서 누리는 기쁨은 오로지 그 판에 빠져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기에.


https://laist.com/2020/02/10/92nd_academy_awards_analysis.php


글을 쓰고 싶다...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기만 했던 그 생각을 1그램의 행동으로 옮겨놓고 보니 딱 그만큼의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이 보인다. 빼꼼히 그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신세계다. 문 저편에는 각자 꿈은 다르지만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하나같이 닮은 이들이 있다. 치열하게 자신을 탐구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면 앞뒤 안가리고 도전한다. 아니, 하고 싶은 것이면 도전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속 모르는 이들이 보면 무슨 일을 저렇게 벌이나 할 수 있는 것들이 사실은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걸음이라는 것을. 한 치 앞이 안보이는 어둠에 두려움도 있지만 가려진 것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기에 오늘도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수많은 점을 찍다 결국은 그 점들이 하나로 이어져 자신이 꿈꾸는 길로 인도할 것임을 나는 안다. 나 역시 그 길을 가고 있기에.


오랜 시간 마음속에만 품었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실체가 되어 나타난 순간 나는 거짓말처럼 무언가에 꽂힌 사람들에 둘러쌓여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다들 자기 것에 미쳐있다. 그야말로 또라이 옆에 또라이. 얌전한 또라이도 있고 나대는 또라이도 있다. 참신한 또라이도 있고 특이한 또라이도 있다. 또라이가 또라이를 만나면? 시너지가 난다. 서로의 성장 욕구가 각자의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이전의 나라면 내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대중 속에 묻혀 가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살았을테지. 그것이 나 자신을 시들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요즘 나는 싱싱하다. 내 이름 옆에 '또라이'라 쓰고 '꿈에 미친 자'로 읽는다. 아니, 아카데미가 사랑한 봉준호 감독도 자신이 'weirdo' 라는데 아카데미까지는 몰라도 내 인생의 영화 감독으로서 나 자신을 '또라이'라 자처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또라이로서 인생에 몰입하고 그런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나아간다.


또라이 옆에 또라이. 그 말이 이렇게 유쾌할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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