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다이어트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당신은 나를 행운아라고 생각할까? 이 말을 들은 이들은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으면서 다이어트 안 해도 되는 축복받은 몸이라고 부러워한다. 그들의 생각이 썩 틀린 것은 아니다. 의사선생님께서 타고나기를 근육이 많은 몸이라 신진대사율이 좋다고 했으니. 하지만 신진대사율이 좋다는게 곧 건강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등학생때까지 나는 햇빛이 조금만 강해도 픽픽 쓰러져 병원 출입이 잦았다. 그러니 마냥 축복받은 몸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어릴 적 겉보기에 늘 비쩍 마른 꼬마였다. 피부가 하얗고 통통했던 친구 집에 놀러 간 날. 그 친구 엄마가 내 팔뚝을 잡아 쥐며 “넌 뭘 먹기는 하니? 왜 이렇게 말랐어? 피죽도 못 먹은 애 같다, 얘”라고 한 말이 어린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피죽이 뭔지도 몰랐지만 ‘못 먹은 애 같다’는 그 말이 싫었다.
그 당시 엄마는 막내만 데리고 아빠 근무지에서 생활했고 나와 언니는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반찬 솜
씨가 좋으신 편이었지만 다양한 반찬을 해 주시지는 않았다. 늘 같은 반찬에 흰 밥이었다.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오셔서 고기도 사 드시고 맛있는 반찬 해 먹으라고 돈도 드렸다는데 할머니는 일절 아무것도 사주시는 법이 없었다. 주는 음식은 늘 잘 먹었다지만 먹고 싶은 것을 시시때때로 먹지는 못했던 터라 늘 음식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엄마가 있었으면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었을텐데. 음식도 고팠고 엄마도 고팠다.
그럴 때 들은 말이라 ‘못 먹은 애’라는 표현이 더 서러웠을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그 날이 ‘많이 먹는 데 살은 안 찐다’는 말이 마냥 부러움의 표현으로만 들리지는 않는 이유다. 남들은 아이를 낳고 살이 붙기도 한다던데 나는 어째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더욱 살이 빠졌다. 엄마는 나를 볼 때 마다 많이 좀 먹으라며 채근하다가도 밥 먹는 모습을 볼 때면 “저렇게 먹는데 왜 살이 안 붙지...너 뭐 신경쓰이는 일 있어?” 라고 묻곤 했다.
어릴 땐 ‘피죽도 못 먹은 애’가 커서는 ‘잘 먹어도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 살이 안 붙는 애’가 되었다. 이쯤 되니 나도 슬슬 내 몸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아니, 신진대사율이 이렇게 좋을 일이야? 뭐 돌아서면 배가 고파?’ 사실 그랬다. 나는 늘 음식을 먹을 때 ‘배부르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잘 없었다. 그냥 먹으면서 소화가 되는 느낌이라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다음 밥을 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줄곧 그랬다. 서른 일곱 살까지는.
서른 일곱. 둘째가 5살이 되던 무렵. 이전과 다르게 먹는 양에 따른 몸무게의 변화가 서서히 느껴졌다. 그 변화가 나는 왠지 반가웠다. 몸에 쌓인 음식의 흔적이 누군가에게는 덜어내야 할 걱정이라면 나에게는 ‘잘 지내고 있음! 걱정 이상 무!’의 증거 같아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의 인증 같은 다이어트. 남들은 다 해 보고 지나간 그것을 이제 나도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어제와 다른 체중계의 숫자를 보며 인생 첫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나이 서른 아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