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저 멀리 벌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린 내 눈엔 갈대만 가득했던 그 허허벌판을 보며 엄마는 내 손을 꼭 쥐었다.
엄마는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건설 현장에 나갔다. 엄마가 일을 하러 가셨냐고? 아니다.
엄마에게는 설레는 기억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진창에 발이 빠진 기억만 선명한 곳. 그 곳은 내가 살던 도시에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15층 높이의 신식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이제 막 터를 잡기 시작한 그 공간을 엄마는 거의 매일 찾아갔다.
그곳을 찾을 때면 늘 필요한 물건인 마냥 엄마는 나를 데리고 갔다. 내 손을 꼭 쥔 엄마 손에서 어린 맘에도 알아차릴 설렘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장소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엄마는 버스를 타고 갈대가 무성한 건설 현장에 내렸다. 엄마가 내 손을 잡은 채 먼저 내렸다. 나는 서두르는 엄마 손에 보조를 맞춰 버스에서 내리려다 그만 발밑 진창에 흰 운동화가 푹 빠져버렸다. 엄마는 뭐가 그리 마음이 급했는지 그것도 모르고 마냥 나를 잡아당겼다.
“엄마! 나 잠깐만!!!”
다급하게 외쳤다. 나를 돌아보던 엄마 얼굴이 놀람에서 책망으로 바뀌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니, 너는...좀 잘 보고 내리지!” 운동화에 잔뜩 묻은 진흙을 털어주며 엄마가 말했다. 뒤이어 “오늘은 오래는 못 있겠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 한 마디에서 엄마의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뭐가 그렇게 아쉬웠을까? 뭐가 그리 설레어서 어린 나보다도 먼저 버스에서 내리고 내 발이 흙으로 엉망진창이 된 것도 모른 채 내 손을 끌어당겼을까?
내 생애 첫 아파트. 그것은 곧 엄마 인생의 첫 아파트이기도 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내 집’이 주는 설렘을 어른이 되고서 알았다. 차곡차곡 올라가는 건물만큼 엄마의 마음에도 기대감과 설렘이 차올랐을 것이다. 내가 7살일 때 이제 막 30대 초반에 들어섰던 우리 엄마. 나의 엄마.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도 2년 뒤에나 완성될 그 집을 매일 생생하게 그려내며 엄마는 어쩌면 가장 먼저 당신 품 안 세 아이를 떠올렸을까.
시장 안쪽 한옥, 부엌 딸린 방 한 칸에 아이 셋을 품고 살던 엄마. 다 커서 물어보니 24평 그 아파트를 볼 때마다 ‘우리 애들 방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렇게나 설레었다고. 아이 셋을 풍족하게 기르기에 턱없이 모자란 아빠의 월급에도 이사 갈 아파트만 생각하면 힘이 났다고 했다.
엄마 인생의 첫 아파트가 나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이 되었다. 그 집에서 엄마의 꿈이 자랐고 나는 그 꿈을 먹고 자랐다. 세 아이와 나의 엄마의 꿈이 한데 모여 옹기종기 자라던 그 집이 아직도 꼭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