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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Apr 29. 2020

조금 다른 방법으로 화장을 합니다

오전 7시 50분. 완벽하게 화장을 마친 거울 속 내 얼굴에 자신감이 빛난다. 민낯으로는 결코 만나볼 수 없는 자신감. 오늘도 나는 브러시에 묻은 파우더를 털어내며 내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화장 끝! 오늘도 세상 속으로 출격 준비 완료!     




출근길 화장 중 내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눈이다. 눈화장을 했다는 건 여유 있는 아침을 보냈다는 증거다. 바쁠 때는 피부 화장만 대강 마친 채 겉옷이며 가방을 들고 바람처럼 현관문을 빠져나가기도 벅차니까. 눈화장은 곧 내게 자신감이다. 얼굴에 장착된 자신감이 하루가 잘 풀리게 도와주니 마냥 기분이 좋다.      


화장을 시작할 때면 마치 나만의 정성스러운 아침 의식을 진행하는 기분이다. 부스터를 화장솜에 묻혀 눈꺼풀과 눈 아래, 눈썹까지 정성스럽게 닦는다. 다음 에센스 성분이 첨가된 스킨을 손에 덜어내 볼, 이마, 턱, 눈가 순으로 천천히 흡수시킨다. 이후 다소 묵직한 질감의 프라이머를 얼굴의 굴곡진 부분 위주로 꼼꼼하게 펴 바르고 고체 파운데이션으로 빠르게 피부 화장을 끝내면 드디어 내가 가장 공들이는 눈화장 차례다.    

 




신중하게 아이섀도 컬러를 고르고 섀도 전용 붓 끝에 살살 문질러 눈가에 펴 바른다. 눈꺼풀에 먼저 바르고 남은 것은 눈 밑에도 터치한다. 다음은 글자만으로도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마스카라 차례다. 마스카라 뚜껑을 돌려 연 후 천천히 꺼낸다. 까만 액이 묻은 브러시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이게 이리 설렐 일인가 싶다. 그 마법의 숯검댕이를 속눈썹에 가져다 대고 한 올 한 올 꼼꼼히 바른다. 색이 진해진 속눈썹이 마치 조명처럼 화사하게 내 눈동자를 빛낸다.      


그런데 잠깐! 마스카라 바르기 전 속눈썹부터 바짝 올리는 게 순서아니냐고? 내 경우는 정반대다. 마스카라부터 바르고 속눈썹을 올린다. 남과 조금 다른 나만의 눈화장. 그 시작을 풀어볼까.    

 

고등학생 때부터 패션 잡지를 엄청 봤다. 12월호에 끼워주는 다이어리는 종류별로 다 가지고 있었을 만큼 잡지 광팬이었다. 잡지 뷰티섹션에 뷰러로 눈썹을 집어 올린 후 마스카라 바르는 과정샷이 소개되었다. 사진을 보며 차근차근 따라 해 보지만 눈꺼풀이 집혀 아프기만 하고 눈썹이 위로 둥글게 올라가기는커녕 기역 자로 꺾여 우스꽝스럽다. 이게 뭐야. 뷰러를 내동댕이쳤다. 아픈 눈을 문지르며 괜한 뷰러 탓을 해 본다.     

  

‘치익’ 성냥대에 닿은 속눈썹이 타는 소리. 어느 대학 신입생의 외마디 절규가 이어지는 소리다. 대학교 1학년 때, TV프로그램에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나와 눈화장 시 꼭 해보라며 마치 대단한 비법인 양 소개한 방법을 따라 해봤다. 성냥대에 불을 붙였다가 얼른 입김을 훅 불어 끈 후 성냥대에 아직 열기가 있을 때 마스카라 칠한 속눈썹에 가져다 댄다. 말려 올라간 속눈썹이 뜨끈해진다. 어느 날 속눈썹 끝이 타 버리는 경험을 한 뒤 이 방법과도 바이바이.     


내 속눈썹은 아래로 처진 형태라 마스카라를 하고 안 하고 극명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화장을 할 때면 마스카라를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처진 눈썹을 올리지 않은 상태로 마스카라의 힘만 빌리면 이내 눈썹이 내려와 아침의 자신감을 장착한 그 여인이 정오쯤엔 내놓기 부끄러운 팬더가 된다. 그럼에도 뷰러도 성냥대도 없이 마스카라를 바르다 문득 속눈썹부터 올리고 마스카라를 바르는 화장의 정석이 내 속눈썹 형태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우선 마스카라를 속눈썹에 고루 발라 속눈썹을 어느 정도 올린 뒤 잠시 기다렸다 약지손가락으로 마스카라가 묻은 속눈썹을 천천히 쓸어올린다. 그러면 손가락의 열기로 싸악 하고 거짓말처럼 올라가는 속눈썹을 만날 수 있다. 아프지도 않고 실패 확률 제로인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성냥대도 뷰러도 못 해낸 그 일의 시작을 내 손가락이 도와주었다. 남이 부러워질 때 나는 나의 네 번째 손가락을 바라본다. 세상에 나갈 자신감의 시작을 도와준 나의 손가락. 남이 가진 것은 나에게 효과 없는 성냥대이자 뷰러다. 성냥대의 훅 올라오는 열기도, 뷰러가 주는 90도 각도로 꺾인 아찔함도 없지만 뭉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의 네 번째 손가락처럼 나도 내가 가진 것으로 찬찬히 세상에 나를 선보여야지.  



Photo by Jake Peter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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