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등에 업고 싸리문 밖 학교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내일모레는 학교갈 수 있겠지, 엊그제 선생님이 내준 산수숙제도 벌써 다 했는데. 산수가 이제 막 재밌어지려던 참인데.
그 내일모레가 60년이 될 줄 몰랐습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진작 해 둔 산수 숙제 검사를 60년 후에나 받게 될 줄 몰랐습니다. 잠시 학교에 다녔던 그 짧은 시간이 이렇게나 오래 마음속에 갈증으로 남아 인생의 모퉁이마다 걸림돌이 될 줄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64살,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하여 공부한 것을 자꾸만 잊어버리는 머리를 탓하며 자책만 수십번. 드디어 시험 날이 되어 아는 문제도 틀리고 고사장을 나서며 저는 참 속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하고픈 간절함이 통했을까요. 저는 합격을 했습니다. 딸들도 조마조마 결과를 기다리다 합격 소식을 듣고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엄마가 늦게 공부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았더니 오히려 용기 있다고, 엄마는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혼자서 어렵사리 공부하여 초등학교 졸업 자격은 얻었지만 중학교 과정은 도저히 혼자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답답함에 한숨만 쉬던 어느 날, 남편이 광고에서 방송통신중학교에 대한 안내를 보았다며 함께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알아보니 저도 신청 자격이 되었습니다. 옳다구나 싶었지요. 대학생 아들이 입학 원서 쓰는데 함께 가주었고 저는 고대하던 중학교에 드디어 입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 밖 학교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곧 갈 건데, 뭐'하는 새침함으로 부러움을 숨기던 그 아이가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이 된 것입니다. 입학식에서 신입생 중 가장 어리다며 저더러 학반이 표시된 피켓을 들라고 하더라고요. 참 감개무량한 순간이었습니다. 의무교육을 받지 못해 이 나라 어디에도 속한 적 없던 기분이었는데 그제야 법적으로 나라 사람이 되었다고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딸은 선생님입니다. 학교에 와보니 딸 같은 선생님이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시는데 공부를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지요. 다 같은 마음으로 배워보겠다고 늙은 학생들이 눈을 깜빡이며 선생님을 봅니다. 되든 안 되든 외우고 또 외우고 다음 날 일 해야 하는데도 새벽까지 책을 들여다봤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컴퓨터도 조작법을 익혀 동영상 강의도 들었습니다. 저는 공부가 할 일인 학생이니까요.
학생. 이 두 글자가 그렇게나 목이 말라서 저는 네 아이를 모두 대학 보내고 공부시켰나 봅니다.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 오랜 갈증을 해소하듯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실, 교과서, 담임선생님. 모든 것들이 다 고맙습니다. 초졸검정고시를 응원해준 아이들도, 계속 공부할 수 있게 알아봐 준 남편도 모두 다 제 공부의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그 날, 저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엄마, 아내가 아닌 '학생'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