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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Aug 30. 2020

엄마랑 나는 반짝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나의 엄마

                                                                                                                                                                                                                                                                                                                                                                                                                                                                                                                                                                                                                                                                                              


"우정은 그냥 친구라는 뜻이고 그중에서도 반짝이 더 좋아요! 엄마랑 나는 반짝이에요."


아침밥을 먹다 말고 둘째가 불쑥 말을 건넸다. 대충 듣고서 "아~ 반짝인다고? 그럼 우리는 반짝반짝 빛나지" 했다. 그랬더니 조금 답답한 듯이 고개를 저으며 좀 더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그냥 친구 말고 반짝요, 반짝!"



잠시 생각을 해 보니...... 며칠 전 누나에게서 '단짝'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게 뭐냐고 묻던 아이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말하는 '반짝'은 '단짝'이었던 거다.


낯선 그 말을 익히기 위해 몇 번이나 입에서 중얼거려 보았겠지. 그 말을 기억하기 위해 아이가 쏟았을 노력이 그려졌다. 그렇게 익힌 단어에 엄마인 나를 붙여 의미를 부여해 주다니! 그 많은 유치원 친구들을 두고 나를 단짝으로 선택해 준 것이 어딘지 뭉클해져서,                                        



"그래? 엄마가 너의 반짝이야?"



물으니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에 그야말로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주책맞게 울 뻔했다.



"엄마, 우리 계속 계속 반짝해요!"



계속...... 그 한 마디가 나를 상념에 젖게 했다. 말을 마치고 밥을 먹는 아이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과거의 어느 날로 소환되었다.


                                            



중학생때였다. 하교 후 정문을 나서는데 학교 옆 아파트 입구에 세워진 트럭 주변에 아주머니들이 빙 둘러서서 뭔가를 마구 고르고 있었다. 궁금한 것은 지나치질 못했던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 잠시만!" 친구들에게 말하고 길을 건너 트럭 근처로 갔다.


"한 벌에 오천원! 고를 것도 없어~! 와~ 이거 진짜 사모님께 딱이다 딱!"


손에 빨간 확성기를 든 아저씨가 손 바쁜 아주머니들 사이를 오가며 말했다. 장사 수완이 좋은 아저씨였다.


'오천원?' 교복 주머니에 든 오천원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아주머니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색색깔의 니트 가디건이 오손도손 누워있었다. 헤집을 때마다 다른 색깔, 다른 디자인의 옷이 나와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너, 뭐 사려고?"


어느 새 곁에 선 아저씨가 확성기를 내려두고 의아한 듯 나에게 물었다.


"네. 우리 엄마 사다주려구요." 나는 옷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아저씨는 잠시 말이 없으시더니,


"이야~ 학생이 기특하다! 한 번 골라봐! 엄마 좋아하시겠다!" 하셨다.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색이 뭐더라...' 엄마가 가진 옷을 떠올리며 어렵사리 한 벌을 골랐다. 베이지색 바탕에 까만 장미가 그려진 가디건이었다.


"아저씨 이거 주세요!" 주머니에 들었던 오천원을 내밀며 말하자 아저씨가 다 골랐냐며 한 번 더 엄마가 진짜 좋아하실거라고, 이게 제일 잘 나가는 거라고 말해주셨다. 그냥 하는 말이었을지 모르나 어린 나는 괜히 으쓱해져 기분이 좋았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길을 마구 뛰어갔다. 엄마에게 빨리 옷을 주고 싶었다. 현관 문을 박차고 들어가 엄마를 다급하게 부르고 얼른 가방에서 까만 봉지를 꺼냈다.


"엄마! 이거 펴 봐!"


엄마가 봉지를 받아들며 이게 뭐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빙글거리며 웃기만 했다. 봉지에서 엄마가 옷을 꺼내는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어서 빨리 엄마의 환한 미소가 보고싶었다.


봉지 안에 든 옷을 엄마가 꺼내자마자 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내가 학교 마치고 나오는데, 그 아파트 있잖아. 우리 학교 앞에 아파트. 거기 앞에 왠 트럭이 있는데 막 아줌마들이 엄청 많은거야. 가까이서 봤더니 엄마들 입는 옷을 파는거야. 근데 오천원이라고 써있더라고. 나도 살 수 있겠다 싶어서 내가 그 사이에 파고 들어가서 막 옷을 골랐어. 아저씨가 이게 제일 잘 나가는거래. 나 잘 골랐지?"


정말 잘 골랐다고, 예쁘다고 칭찬하며 '엄마 잘 입을게~' 하면서 웃는 엄마 얼굴을 기다렸다.


그런데 엄마가 한참을 옷을 보면서 고개를 들지 않는거다. 그리고는 겨우 고개를 들고서 띄엄띄엄 말했다.


"아이고..그거 너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엄마가 준 거 잖아. 그걸로 엄마 옷을 사왔어? 정말로 엄마가..너무 고맙고...미안하고 그렇다. 엄마가 이 옷, 진짜 잘 입을게."


나는 그런 엄마의 반응이 다소 예상과 달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고 '정말 고마워' 라고 했다. 엄마는 그 때 조금 울먹거렸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생각하니 그 즈음이 우리집이 막 어려워지기 시작하던 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가 요즘 좀 아프시다. 전업주부로 지내시다 갑자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 했던 그 때부터 혹사해 온 몸이다. 탈이 안 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을 통틀어 언제나 나의 1번 단짝은 나의 엄마였다.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고 모든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그런 단짝. 어느 새 밥을 다 먹고 식탁을 벗어난 둘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엄마, 내가 언제까지나 엄마의 반짝이 되어줄게. 아프지 말고 건강해줘. 우리 계속 계속 반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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