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면 장애를 가지고 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 그 장애가 도드라졌는데 아마 생체시계의 변화, 그리고 아침에 일찍 등교해서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는 일련의 수면방해(?)가 수면을 위해 필요한 생체신호를 교란시켰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 많은 청소년기 학생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생긴 이상수면패턴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곯아떨어지기는 순식간인데 10분 이내에 금방 깨고 다시 잠들기가 매우 어렵다든지, 밤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깬다든지 등등 패턴도 계절이나 컨디션마다 각양각색이라 오늘은 내가 어떻게 잠들고 내일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은근 기대를 갖게 되는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잠의 요정이 내 등에 딱 붙어서 귀를 잡아당겼다 놨다 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수면유도제와 수면제를 많이 처방받아 두루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 이제는 약을 다루는 입장이다 보니 수면제를 처방받거나 수면유도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물어본다면 경험을 곁들어 아주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다.
수면과 각성은 시소와 같다. 수면에 우세한 인자들이 많이 작용하면 수면에 잘 들고 각성에 우서 한 인자들이 많이 작용하면 정신이 활짝 깬다. 그래서 어떤 인자들이 더 우세하게 만드느냐가 수면과 각성을 좌우한다.
그렇다면 수면제와 수면유도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현재 시판되는 수면유도제는 각성상태를 조금 낮춤으로써 그 반대급부로 수면에 잘 들도록 유도한다. 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신경전달물질, 호르몬들이 작용하는데 그중 주요 인자는 히스타민이다. 뇌 시상하부의 결절유두핵 (tuberomammillary nucleus -TMN)에서 분비된 히스타민이 뇌 전 히스타민 수용체에 결합을 하면 각성 상태가 유지된다. 그렇다면 뇌의 히스타민 수용체가 작용하지 못하게 막는다면(block) 각성효과가 떨어져 수면이 우세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졸린 감기약에 쓰이는 초기(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이에 해당한다. 일반의약품으로 허가된 수면유도 항히스타민제는 디펜히드라민과 독시라민이 있다.
디펜히드라민과 독시라민의 차이는 무엇일까?
효과는 복용 후 30분 이내에 발현된다. 그러나 독시라민이 조금 더 길게 작용하기 때문에 오랜 수면이 필요한 경우 독시라민이 더 선호된다. 효과가 길고 강한 만큼 거꾸로 생각한다면 각성이 어렵다는 뜻이다. 다음날 중요한 업무가 있거나 단순히 입면이 어려운 경우 디펜히드라민이 선호되고, 입면과 수면유지가 어렵고 다음날 일정이 딱히 없는 경우 독시라민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약제 모두 장기간 사용하거나 효과가 약하다고 해서 과량 복용하는 경우 인지기능장애나 반동성 불면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와 반드시 상의를 하고 복용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수면제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며(전문의약품) 수면에 필요한 인자를 적극 활성화 시킨다. 대표적인 예로 가바(GABA)가 있다. 가바는 뇌의 대표적인 신경 억제성 물질로서 가바수용체에 가바가 닿으면 염소이온이 세포 내로 들어오게 되어 신경이 안정화된다. 벤조디아제핀 약물이 대표적이며 (디아제팜, 로라제팜, 트리아졸람과 같이 ~람 ~팜으로 끝나는 약들) 세간을 여러 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Z-drug (졸피뎀, 조피클론, 잘레플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벤조디아제핀계열 약제와 Z-drug 약제모두 가바수용체의 특정 자리에 붙는다. 이때 가바가 가바수용체에 붙는다면 염소이온채널이 자주 열리게 되며, 진정 또는 수면이 유도된다. 두 약제의 차이는 그 특정 자리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르며 Z-drug가 α1 서브유닛에 선택적으로 작용해 수면에 더 특화된 진정 작용을 보인다. 하지만 두 약제 모두 인지기능 저하, 의존성 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절대 임의로 복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도록 한다.
수면유도제는 각성의 소음을 낮추는 조용한 속삭임이고, 수면제는 뇌의 불빛을 하나씩 꺼주는 진정한 정전처럼 느껴진다. 어떤 방식이건, 우리는 이 도구들을 의지의 수단이 아닌 회복의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수면은 단지 피곤함을 푸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균형을 되찾는 내면의 조율 시간이다. 그래서 수면제를 쓰기 전, 수면유도제를 찾기 전, 우리는 내 안의 시소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러면 잠의 요정이 어느 날엔가, 살며시 귀를 놓아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