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하는 사람

by 샤토디

요즘 식당을 가면 종종 1인석이 구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창을 따라 일렬로 긴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앞에 서로를 향하지 않은 채 창을 향한 여러 개의 의자. 사람들은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고르고 음식을 받아 그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 밥 먹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것 자체가 시간이며 체력이며 소모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편견에 직면하더라도 혼자 밥 먹는 것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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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단지 그러한 효용 때문에 혼자 밥 먹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선호하기보다는 거기에 익숙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집밥을 잘 먹는 아이였다. 김과 김치 고등어만 있으면 밥을 두 그릇도 해치우는 식성 하나는 동네 제일가는 아이였다. 나는 그렇게 먹는 밥이 정말 맛있었다. 이따금 외식을 하더라도 집밥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기보다는 그건 그것대로 맛있었고, 이건 이것대로 맛있었다. 엄마의 정성에 대한 개념도 딱히 없었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오면 밥이 차려져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집밥은 허기짐을 달래주었기에 큰 만족감을 주었고 그래서 더 맛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오후수업이 생겼다. 점심을 반드시 학교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당시 우리 학교는 급식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챙겨서 보내라는 가정통신문이 각 집으로 전달되었다. 이제 이 맛있는 음식을 학교에서도 먹을 수 있다니. 나는 설렘이 가득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었다. 작은 책상 두 개를 붙여 네다섯 명이 한 자리에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펼쳤다. 친구들 찬통에는 소시지, 불고기, 계란말이 등 나에겐 다소 생소한 음식들이 많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내 반찬이 맛있었으니까. 우리는 서로 반찬을 나누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끝나면 항상 나의 찬통은 줄지 않았다. 내가 가져온 반찬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누구네 집 반찬이 맛있다는 소문이 금세 퍼졌고, 점심시간이 되면 그 친구 주변은 항상 만석이었다. 누구도 내 반찬을 궁금해하거나 찾지 않았다. 나도 점점 반찬을 남기는 일이 많았고 급기야 가져온 도시락 그대로 집에 가져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아침 일찍부터 내 도시락을 준비하는 엄마의 고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서도 엄마의 반찬에 대해 투정하기 시작했다. 점점 엄마가 준비한 도시락이 부끄러웠다. 나는 슬그머니 친구들이 먹는 자리에서 빠져나와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밥을 혼자 먹냐고. 나는 도시락이 형편없어 보인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점심식사를 알리는 벨이 울리면 나는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고 친구들이 이미 깐 판에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먹게 되었네 라며 어찌어찌 친구들과 스스로에게 둘러댔다. 그렇게 나의 혼밥 여정이 시작되었다.


처음 혼밥을 할 때에는 친구들의 시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한없이 위축되었고 점심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점점 혼밥 기간이 계속될수록 친구들의 시선은 옅어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혼밥을 할 때 책을 읽거나 여러 가지 공상을 하며 나 홀로 시간 보내는 법을 익혀 나갔다.


사람들은 혼자 밥을 먹을 때 심심하지 않으냐, 외롭지 않으냐고 묻곤 한다. 심심하고 때로는 외로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혼자 밥을 먹어야 떠오르는 생각, 정리되는 생각들이 있다. 내 안의 소란을 잠재우고 한데 모으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초라함을 숨기기 위해 혼자를 택했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오롯이 마주하기 위해 기꺼이 혼자가 된다.

수요일 연재